07:00 누군가 부르는 소리 있어
누군가 부르는 소리 있어 돌아보니 랑랑이다. 중문 옆 수납장에 올라가, 못 본 척 달력을 보며 뭔가 사부작거리는 집사를 간절하게 부른다. 어길 수 없는 가냘픈 청을 들었으니, 이제 랑랑의 털 손질을 시작해야 한다. 이른 아침, 랑랑 헤어 살롱을 연다.
랑랑. 그는 첫째 고양이. 세상의 모든 첫째들이 그렇듯 애틋하다. 다른 고양이를 데려가도 괜찮다는 유기묘 보호소 직원의 친절한 말을 들었고, 집에 오는 길에 들렀던 병원의 수의사는,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알겠지만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염려의 말을 했다. 처음이 아니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처음이라서 무모했지만 용감했다. 처음처럼 할 수만 있다면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매주 병원에 가고, 매일 약물 목욕을 시켰다. 랑랑은 조금씩 달라졌다. 친절한 염려를 이겨내고 과거를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미묘가 되었다. 이미 잘리고 없어진 짧은 꼬리만 아니라면 그가 버려진 고양이었다고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식 자랑하는 것을 팔불출이라 하니, 고양이 자랑하는 것은 칠불출이나 육불출 아니면 더 아래 불출이 되겠지만, 랑랑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랑랑은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고양이의 보은을 안다. 베란다 구석구석 쑤셔놓은 비닐이나 천 쪼가리를 굳이 물고 와서, 집사들이 머무는 거실이나 침대 근처에 갖다 놓는다. 야생냥이였다면 쥐, 새, 뱀이었을 것이다. 엉거주춤하게 쩍 벌린 자세로 어기적 거리며 자신만큼 큰 천 쪼가리를 물고 오는 모습은, 고양이만의 냉정하고 도도한 걸음걸이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하지만 집사를 향한 속 깊은 마음 때문에 웃기면서도 마냥 웃기지만은 않다. 게다가 랑랑은 어려서부터 비닐을 뜯는 걸 좋아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비닐 뭉치를 마구 뜯지 않고 집사들에게 가져다주는 랑랑은, 분명 지극한 효심의 보은냥이다.
때로는 대화도 가능하다. 대화의 기본 규칙이 주고받는 것임을 랑랑은 알고 있다. 인간의 말로 물으면 뭔가 안다는 듯이 고양이 말로 대답한다. 관심 있는 주제에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목소리에 잔뜩 힘을 준다. 가장 좋아하는 말은 '갈까'다. '간식을 먹으러 갈까'의 준말이다. 이 말을 들으면 아주 신이 나서 여러 번 대답을 하고, 이리저리 오가며 온몸으로 대답한다. 랑랑은 확실히 대화냥이다.
어린 랑랑은 미니 야구를 즐겼다. 자신의 털을 뭉쳐 만든 공을 치면, 멀리 떨어진 공을 물고 왔다. 동체반응이 빨라서 공중에 떠 있는 공을 몸을 날려 잡을 때도 있다. 공놀이가 심드렁해지면, 바닥에 뉘어서 빙글빙글 돌려준다. 때로는 바닥에서 미끄럼을 타도록 힘껏 밀어 보낸다. 멀리 밀려갔다가 돌아와서 도로 발아래 눕는다. 어린 랑랑은 한밤중에도 지칠 줄 모르고 우다다 뛰는 체육냥이였다.
이제 중년이 된 랑랑은 야구나 미끄럼 같은 과격한 장난은 삼간다. 그래도 변함없는 건 마중이다. 번호키 누르는 소리가 들리면 자다가도, 놀다가도 총총총 현관으로 나온다. 반가운 마음에 머리라도 만질라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휙 돌아 도도하게 들어간다. 그제야 좀 고양이답다. 반길 이 없는 귀갓길에 랑랑의 마중은 집에 돌아오는 작은 기쁨이다.
집만 지키던 남자들이 이사 갈 때 반려동물을 안고 있는 이유가 가족들이 떼놓고 갈까 두려워서라는 웃지 못할 우스개 소리가 있었다. 그런데 그건 아마 다른 뜻도 있는 것은 아닐까?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더라도 반려동물만 있다면 그나마 조금은 괜찮다는 뜻은 아닐까?
바쁘지 않은 아침 시간이 없었던 바깥양반 시절에는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도 성의 없이 대했다. 내 머리 빗을 시간도 없으니 남의 털은 대충대충 빗었다. 서너 번 쓱쓱 빗는 척만 해줘도 좋아서 가르릉 소리를 냈다. 그러다 멈추면 아쉬운 듯 애절한 눈빛을 보낸다. 더 빗어달라는 랑랑과 필사적으로 눈을 피하려는 집사의 신경전이 있었다. 잠깐이라도 애절한 눈과 마주친다면 다시 빗질을 해야 하고, 지하철까지 뛰어야 한다. 그러니 눈을 피하는 것이 상수다. 눈빛 싸움에서 진 랑랑은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 헤어 살롱을 떠난다.
진심을 다하는 행동에도 반응해 줄 이 없는 집사람이 되고 보니, 작고 사소했던 행동들에 열심이다. 랑랑의 애절한 부름에 신실한 마음으로 나아간다. 차분하고 섬세한 고객님이 매우 만족할 때까지 찬찬히 빗질을 해준다. 서비스에 만족한 고객님은 가르랑 가르랑 연신 소리를 내며 고개를 비빈다. 젖소 문양을 닮은 희고 검은 털들이 가지런해지고, 분홍 코가 촉촉하고 선명해졌다.
고객님 오늘도 만족하셨나요? 별점 다섯 개 부탁드려요. 내일 또 오세요. 아침 한정 랑랑 헤어 살롱입니다.
집사의 퇴사와 상관없이 랑랑 헤어 살롱은 성업 중이다. 가끔은 랑랑을 질투하는 다른 고양이가 침입해서 빗다만 머리로 도망가는 난투극도 벌어진다. 그래도 랑랑 헤어 살롱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