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0 어제의 흔적을 정리하고 새날을 맞이한다
랑랑 헤어 살롱 문을 닫았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하나의 문이 열린다고 했던가? 새로운 문을 열기 위해 어제의 흔적을 정리한다. 어제의 흔적이 온전히 정리되지 않으면, 새로운 오늘을 맞기 힘들다. 사물이든 일이든 감정이든 온전히 정리되지 못한 어제는 오늘을 괴롭힌다. 흘러갈 것은 흐르도록, 머물 것은 머물도록 제자리를 찾아 줘야 한다.
부엌으로 간다. 어제 썼던 그릇과 조리도구들을 제자리에 넣는다. 몇 시간 후면 다시 꺼내 쓸 텐데, 굳이 정리할 필요가 있을까 싶겠지만, 그릇들을 보지도 않고 척척 찾아 쓰는 맛은 정리해야만 알 수 있다. 정리되지 않은 도구들이 흩어져 있는 부엌에선 새로운 요리를 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더군다나 부엌은 집안에서 가장 바쁜 곳이다. 꺼지지 않는 전자제품이 밤새 일하는 곳이며, 식구들이 모여 함께 하는 공간이다. 출출한 누군가의 배를 채워주고, 입이 궁금한 사람에게 답도 찾아준다. 목마른 이들의 쉴만한 물가다. 가장 먼저 불을 켜고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이다. 한때는 집사람의 전용 공간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누구든 쓸 수 있는 공용 공간이 되어 더 바빠졌다. 어느 곳보다 바쁜 곳이기에 가장 정리가 잘 되어야 할 곳이다. 무엇이든 제자리에 있어야만 필요할 때 쓰일 수 있다.
고양이들의 화장실이 있는 베란다로 간다. 확장을 하지 않은 베란다는 폭이 넓고 거실과 확실하게 분리된다. 고양이들이 숨기고 싶은 사생활을 누리기에 좋은 곳이다. 사람의 눈을 피해 쾌적한 쾌변활동을 하라고 화장실 다섯 개를 놓았다. 둘레에는 초록초록 화분들로 둘렀다. 푸릇푸릇한 이 화분들이 때론 은신처 역할을 한다. 화분 뒤에 숨어서 고양이들은 창문까지 뻗어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을 보거나, 지저귀는 새들을 사냥꾼의 눈으로 노려보고, 지나가는 행인들을 그윽이 바라본다. 고양이가 창밖을 보는 것은 집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 한다. 훌륭한 파수꾼들.
베란다에서 어젯밤에 생산된 쾌변의 흔적들을 치운다. 아침 저녁으로 치우지만 치울 때마다 언제 치웠냐는 듯이 쌓여있는 흔적들을 보면, 유기체의 생산성이란 대단하다. 물리적인 흔적을 생산하는 것도 이와 같을진대 보이지 않는 감정이나 생각의 흔적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러니 쾌변의 흔적을 치우듯 머리도 마음도 매일매일 치워야 할 일이다.
치우는 일은 대개는 즐겁지만 치우는 방법은 즐겁지만은 않다. 생활 용품점에서 사 온 비닐을 하루에 두 장씩 쓴다. 그리고 그 비닐을 치우기 위해 비닐로 된 종량제 봉투에 담는다. 우리 집을 치우려고 치워지지 않을 흔적을 지구 한 켠으로 옮긴다. 어제의 흔적을 영원히 치울 수 없는 지구는 괜찮을까? 마음이 불편하다. 치우는 일은 단 한순간도 멈춰서는 안 된다.
낮에는 주로 자고 밤에 활동하는 고양이들이 만든 아침 거실은 어수선하다. 책꽂이 위에 다소곳이 놓여 있어야 할 물건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화장실부터 끌고 온 모래들로 바닥은 질겅거린다. 간밤에 우다다 우다다 뛰어다닌 듯 제자리에 있어야 할 물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꽤나 진진한 결투를 했는지 털 뭉치들이 황야의 덤불처럼 굴러다닌다. 떨어진 물건들을 올리고, 모래를 쓸고, 털들을 하나로 사려서 버린다.
드디어 어제의 흔적이 정리되었다. 태양은 진작에 아침을 넘어서려 하고 이제야 온전한 오늘을 맞이한다.
정식 버전의 퇴직 후에는 일상에 작은 변화들이 있었지만, 아침 정리는 여전하다. 오늘을 맞기 위해 어제를 정리하는 일은 멈출 수도, 변할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