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버전 퇴직. 일상 12

09:00 애증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by 김기원

운동장은 서재가 되었다. 서재에서 종이로 된 책을 읽는다. 읽기는 보기보다 어렵다. 읽기의 의미를 아무리 되뇌어도, 모니터에 빼앗긴 눈을 되찾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더더욱 종이책을 읽는다. 이것은 의리다. 오래된 인연 사이에 애증이 지나고 난 자리에 남은 것은 의리다.

읽기를 동경해서 전공으로 선택했다. 전공자가 되는 과정에서 읽기는 즐거웠다. 마음대로 읽고 아무렇게나 생각해도 어느 것 하나 틀리지 않았다. 동경을 넘어서 애정이 자리 잡았다. 전공자가 되어 전공으로 먹고사는 동안에 읽기는 힘겨워졌다. 글을 가르고 문장을 잘라내고 단어를 헤집는 일들은 피가 튀지 않을 뿐 수술장이었다. 왕성했던 글의 맥박이 선의로 포장된 선무당의 칼날 아래서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선무당에게도 읽기는 부담이었다. 오래 남겨진 글들은 이미 읽었어야 했고, 시대를 관통하는 글들은 읽는 중이어야 했다. 전공자의 읽기는 생존이거나 경쟁력이라서 즐거움이 설 자리는 없었다. 들숨날숨의 속도로 쏟아지는 글들은 제목만 읽는 것도 벅찼다. 부담은 동경에서 자라난 애정을 짓밟았고 읽는 즐거움은 조금씩 소멸했다.

읽기의 아름다움에 다시 눈을 뜨게 된 것은 전공자라는 이름을 떼어내고 나서다. 전공과는 거리가 있는 일을 하면서, 읽기의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했다. 리듬을 가진 글에 맞춰 고개를 까딱였고, 생각이 넘치는 글에서 지혜를 길어 올렸다.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삶이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더니, 읽기란 가까이 있을 때는 부담이더니 멀리서 보니 아름다웠다. 애정하는 것과는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다시 찾은 애정에 변화가 찾아왔다. 똑똑한 전화기를 타고 왔다. 때와 장소를 가지리 않는 영상의 구애는 빠르게 새로운 인연으로 자리 잡았다. 변치 않는 것은 없고, 옛 인연은 새 인연으로 대체되었다. 옛 인연은 속수무책으로 초토화되었다. 텅 빈자리에 의리만 남았다. 의리를 지키려 종이책을 집는다.

의리를 지키는 나름의 소신이 있다. 애정하되 소유하지 않는다. 읽고 싶다고 모두 소유하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빌려 읽는다. 꼭 사야 한다면 중고로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종이를 덜 소비해서 지구를 돕기 위한 노력이다. 의리를 지키는 데도 절제는 필요하다.

알려하되 깊지는 않게. 차근차근 깊이 있게 읽지 않는다. 속속들이 다 알고 나면 흥미가 떨어진다. 오래된 인연일수록 볼 때마다 새로운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대략의 흐름을 알 정도로만 읽는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다시 읽어야겠다는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면 그때 천천히 다시 읽는다. 어떤 책은 세 번을 내리읽기도 했다. 마음의 소리가 들릴 때만 찬찬하면 된다. 그러니 후루룩 읽고 마음의 소리를 기다린다. 의리는 마음의 소리가 이끄는 행동이다.

퐁당퐁당 한 걸음씩 건너서. 서로 다른 분야의 책을 읽는다. 치우친 읽기는 편중된 사고를 만든다. 한 눈만으로도 세상을 볼 수 있지만, 두 눈으로 봐야 정확한 거리감을 가진다. 휩쓸린 마음으로는 제대로 보기 어렵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다. 어떤 때는 퐁퐁퐁이기도 하고, 다른 때는 당당당이기도 하다. 그래도 퐁당퐁당 마음을 던지려고 애쓴다. 의리를 지키는 데는 애쓰는 마음이 필요하다.


바깥 양반 시절에는 출퇴근 시간에 주로 읽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버려지는 이십 분만이라도 의리의 시간을 가지려 했다. 집사람이 되어서는 시간 사용은 여유롭지만 읽으려는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상황이 열악하면 간절하게 하고 싶고, 상황이 나아지면 간절함이 사라지는 것 같다. 이제 읽기는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 일이 되었다. 그래서 서재에서 첫 일과는 읽기다. 이건 의리다.

정식 버전 퇴직 후에는 읽기 시간이 자연스레 바뀌었다. 새벽에 한 번은 잠이 깨는 신묘한 나이 탓에, 새벽에 눈을 뜨면 읽기 시간을 갖는다. 읽기를 하면 달아났던 잠이 돌아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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