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30 바깥 양반의 필사, 집 사람의 필사
필사를 시작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했던 바깥 양반은 이른 출근을 한다. 출근 시간 자체도 이르지만, 번잡스러운 것이 싫어서 한가한 시간대에 이용하려고 더 이르게 움직였다. 시작은 분주했지만 도착해 보면 겨우 반 시각정도 이를 뿐이다. 역시 자가용을 이용할까를 고민하지만, 휑한 주차장을 둘러보면 자가용을 이용한다고 반드시 출근이 이른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럴 필요도 없다.
하루를 맞이할 정돈된 마음이 필요해서 이른 출근을 한다. 창을 연다. 지난밤 내내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묵은 공기를 내보낸다. 가벼운 공기를 맞는다. 산뜻하다. 물을 끓인다. 라디오를 켠다. 음량을 낮춰 나직하게 흐르는 고전 음악을 배경 삼아 차를 마신다. 향이 동심원을 그리듯 퍼진다. 살랑이는 공기를 타고 물결처럼 퍼져나간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수심처럼 차향이 그윽하다. 이른 아침 잔잔한 호수 위에 배를 띄운 듯이 고요하게 하루를 맞는다. 잠깐의 여유를 위해 분주했던 아침을 보냈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일이다.
오늘의 일을 헤아린다. 꼭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나눈다. 빠진 일이 있을까 싶어서 메일을 연다. 역시 메일은 오지 않았다. 매일 오지 않지만 매일매일 올 것 같아 매일 열어 보는 것이 메일이다. 새로 온 메일은 없고 당연하다는 듯이 뉴스를 검색한다. 어제의 일이건만 늘 새롭게 뉴스라 불리는 일들은, 대개는 어제의 일처럼 알아도 어쩔 수 없거나, 알 필요도 없는 일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의 사소한 걱정, 바뀌지 않을 것들에 대한 헛된 희망들을 검색한다. 검색은 다음 검색을 부르고 잠깐이라 생각했던 시간은 긴 시간으로 이어진다. 여기저기 자동차 시동 꺼지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검색은 계속된다.
새로운 일이 필요했다. 검색에 검색에 검색이 꼬리에 꼬리에 꼬리를 물기 전에, 고요한 아침을 지킬 결계가 필요했다. 검색에 빼앗긴 마음을 찾아올 수 있는 일. 예열 중인 머리에 갑자기 큰 부하를 주지 않으면서 집중할 수 있는 일. 짧은 시간 안에 끝낼 수 있어서 언제든 멈출 수 있는 일. 하고 싶으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일. 의미가 있다면 좋겠지만 없어도 낙심하지 않을 일이 필요했다.
필사를 시작했다. 한문 필사를 시작했다. 문자지만 그림 같은 모양이 복잡해서 집중하기 좋다. 글자마다 뜻이 있으니 짧게 끝낼 수도 있다. 문장에는 좋은 의미도 담겼다. 바깥 양반은 한문 필사로 아침 시간을 시작했다. 아침의 고요를 지켜줄 결계를 쳤다.
논어를 썼다. 글자 하나하나를 천천히 읽고 찬찬히 쓴다. 빨리 쓰는 것이, 모두 다 쓰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하루에 한 문장씩 천천히 가자는 마음으로 찬찬히 쓴다. 손을 쓰는 일은 마음을 쓰는 일보다 무거워서 들뜬 것을 가라앉혔다. 들뜬 마음에 필요한 일은 목적 없이 손을 쓰는 일이었다.
집사람이 된 후에도 필사는 계속된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고 매일매일 써간 문장들이 논어를 뚫었다. 이제는 시경을 쓴다. 젊을 적에 잠시 다녔던 서당에서 대학, 중용을 읽고 논어를 읽다가 서당 다니기를 접었다. 그때 논어 읽기가 끝나면 시경을 읽는다고 했었다. 바깥 양반의 아침 필사로 논어를 썼고, 이제 집사람의 필사로 시경을 쓴다.
시경에는 시가 삼백여 편이 들어 있고 모두 사특한 뜻이 없다고 한다. 하루에 한 편을 쓴다면 일 년, 하루에 세 편을 쓴다면 백 일이면 충분히 쓸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시작부터 사특한 계산을 해서였는지 곧 고난이 닥쳐왔다. 실상 시경의 시 한 편에는 여러 수가 들어 있다. 어떤 것은 한 편이 십여 수가 넘는 것도 있다. 시경은 천 이백 수 가까운 시가 담겨 있다. 순수함을 잃은 자리에 계산이 앞서고, 계산이 놓인 자리에는 고난이 있을 뿐이다. 첫 마음을 잃은 결과다. 그래도 내친걸음이라 끝까지 가기로 했고 하루에 세 수씩 쓰기로 했다.
시경을 쓰는 공책도 논어와 마찬가지로, 굴러다니던 공책에 쓴다. 학령기 아동들이 있었기에 시작은 거창했으나 그 끝은 조촐한 공책들이 어디든 뒹굴었다. 언제 버려져도 아쉬울 것 없는 공책들을 모아 끝까지 거창한 공책으로 만들어 주기로 했다. 시경 쓰기도 끝까지 거창한 일이 되길 바라면서 오늘도 시경을 쓴다.
메타버전 퇴직 안에 시경을 모두 쓰고 싶었지만, 정식버전 퇴직 이후에도 시경 쓰기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