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 밖으로 나서야 할 시간
들여다봐야만 보이는 것들은 조금씩만 달라진다. 아침 창에 밀려드는 어스름한 푸른빛이나, 창턱에 걸쳤다가 베란다에 살금살금 발을 들였다가, 거실까지 스멀스멀 들어왔다가, 누가 볼세라 슬금슬금 뒷걸음치는 햇살도, 내내 조금씩만 달라진다. 하잘것없는 조금씩 때문에 하루가 시작되고 계절이 오간다.
조금씩만 하는 일들로 가득한 오전이 지났다. 이것을 한다고 분명하게 말하기엔 멋쩍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하기엔 표 나게 사부작거린다.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만한 것도 없지만 깨끗이 잊기에는 아쉬운 일들로 가득하다. 기억과 망각 사이를 서성이는 일들을 조금씩 하다 보면, 이 조금씩이 하루를 바꾼다. 자주 미소 짓고, 꽉 찬 것이 주는 뿌듯함이 차오른다.
어느덧 햇살이 도톰해졌다. 햇살을 따라 밖으로 나선다. 오전에 머리를 썼으니 몸을 써야 할 차례다. 신체 기능이 최고로 활성화되는 오후에는 몸을 써야 한다. 그보다도, 즐거운 집 안 생활을 오래도록 즐기려면 가끔은 집을 떠나야 한다. 은은한 숯불처럼 오래 타는 관계를 만들려면 때로는 거리를 둬야 한다.
호기롭게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나 막상 갈 곳은 없다.
바깥 양반 시절, 하루 종일 집 안에 있어도 되는 날이 축복처럼 주어질 때도 집 밖으로 나섰다. 반듯이 누었다가, 비스듬히 누웠다가, 그도 지겨우면 앉아도 있다가, 마침내는 밖으로 나섰다. 약수터로 물을 뜨러 간다는 핑계를 붙였다. 새벽 배송으로 찾아오는 생수들이 현관 밖에서 기다리는데, 굳이 약수터를 간다. 물이 간절해서라기보다 집 안 생활이 익숙하지 않아서다. 그러니만큼 집 밖이 익숙할 만도 한데, 막상 집사람의 집 밖은 낯설기만 하다. 다녔던 밖과 다니고 싶은 밖은 확실히 다르다. 그나저나 어디로 가지?
기억이 발걸음을 약수터로 인도한다. 물을 뜨지 않는 발걸음이라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하릴없이 처음으로 다니기 시작한 길은 약수터 길이다. 짧게 걷고 싶거나 짬을 내서 걷기에 최적화된 길이다.
더 걷고 싶을 때는 약수터 너머까지 나간다. 약수터 뒤편 산 아래 찻길을 따라 걷는다. 차를 타고 지날 때와는 다른 풍경을 발견한다. 길은 길로 이어지고 한 방향으로만 간다면 둥그런 원을 그려 제자리로 돌아온다. 천천히 걸어도 두 시간이면 충분한 산아랫길이다. 변형도 있다. 찻길을 따라 걷다가 산 아래 마을로 들어가 쏘다니는 마을 길이다. 오래된 마을이 수묵화처럼 고즈넉한 길이다. 가장 자주 다녔다.
무작정 걷고 싶을 땐, 찻길을 건너 산으로 접어든다. 숲 속 길은 시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지만 여러 가지 위험도 있다. 가장 위험한 일은, 집을 나서야 하고 갈 곳은 없는 사람들이 단골로 이용하는지라 강제로 거울치료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산할 것이라고 생각한 곳을 아무리 찾아가도 반드시 사람들을 만난다. 상황이 비슷해지면 생각도 비슷해지나 보다. 처음에 몇 번 다닌 이후로 차차 다니지 않게 된 아쉬운 길이다.
누군가 산책을 살아있는 책이라 했다. 또 움직이는 명상이라고도 했다. 마주치는 광경을 그대로 쓸 수만 있다면 생생한 책이 되리라. 걷는 동안 떠올랐다 이어졌다 흩어졌다 가라앉는 생각들은, 쉬이 드러내지 못할 깊은 속마음이다. 골똘하게 마주하다 보면 어느새 떠오르듯 가벼워진다. 문 밖을 나설 때, 갈 곳 몰라 흔들렸던 발걸음이 차분해지고 가뿐해져 돌아온다. 등 뒤로 늦은 오후의 햇살이 두툼하게 내린다.
매일매일 명상 산책을 즐긴 기간은 사 개월을 넘지 못했다. 봄이 깊어지고 오후의 햇살은 두꺼워졌다. 걷는 발걸음이 무거워서 즐기는 산책을 할 수 없었다. 새로운 무엇이 필요했다. 더위를 피하면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무엇. 불현듯 생각난 것이 수영이다. 그 후로 오랫동안 산책을 찾지 않게 만든 수영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