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 수영을 배우는 시간 삶을 읽는 시간
재빨리 여름에게 자리를 넘기려는 봄이 태양을 재촉한다. 따갑다 못해 뜨거운 햇살이 걷는 내내 등에 내린다. 태양을 피하는 법이 필요하다. 햇살에는 그늘, 더위엔 역시 물이다. 그늘 속에 있는 물을 찾아 수영을 시작하기로 했다.
집에서 갈 수 있는 실내 수영장이 서너 곳 있다. 수질, 시설, 강습, 평판, 거리, 접근 방법 등 여러 면에서 서로 다른 평가를 받는 곳들이다. 어디로 갈까? 결정 기계가 있었으면 좋겠다.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되면 습관처럼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한다. 기준은 점점 많아지고 생각도 길어진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바둑계 속담처럼 오래 생각한다고 늘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비행기표를 예매할 때, 좀 더 생각해 보자고 했다가 더 비싸게 샀던 적도 있다. 결정이 느린 것은 대개는 신중한 것이라기보다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꾸준히 하려면 가까워야 한다. 손을 뻗으면 닿을 곳이면 좋다. 농사도 가까워야 잘 지을 수 있다. 문전옥답이라는 말이 그래서 생겨났다. 무엇보다 가깝고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수영장이 우선이다. 가장 가까운 수영장으로 결정했다. 모처럼 신속하게 결정을 내렸더니 속이 시원하다. 하나의 기준만 고려하니 결정이 빠르다. 기준은 간결하게 결정은 신속하게.
산책 대신이라 강습은 오후 2시다. 이 시간대에는 어르신들이 많다. 나이로는 밀리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이곳에서는 한참 밀린다. 오십은 젊다. 육십은 표시도 안 난다. 칠십은 흔하다. 팔십이 넘어야 존재감이 드러난다. 배우는 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꾸준히 한다면,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처럼 뛰어날 수는 없지만, 해낼 수는 있다. 흰머리조차 듬성듬성하고 허리가 굽으신 어르신이 계셨다. 팔십이 넘으셨단다. 초급반 동기다. 물에 들어오는 것도, 물에 뜨는 것도, 팔을 젓는 것도, 발을 차는 것도, 호흡을 하는 것도, 어느 것 하나 쉬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꾸준하시다. 동기들 몇은 한 두 달 만에 자취를 감추고, 새로운 인원들이 들어왔다가 안면을 트기도 전에 사라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어르신은 아프신 날이 아니라면 언제든 물속에 계셨다. 다른 동기들이 중급반 상급반으로 옮겨갈 동안에도 여전히 초급반에 계셨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물에 뜨고, 팔을 저어 앞으로 나가고 계셨다. 꾸준하다면 잘하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할 수는 있다. 할 수 없다고 지레 겁먹은 일들 중에는 꾸준함이 부족한 것도 있다.
수영은 외로운 운동이다. 혼자 와서 혼자 하고 혼자 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쓸 수 있는 공간도 정해져 있고 다른 사람과 굳이 부딪힐 이유도 없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철저히 혼자여서 수줍음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최적화된 운동이다. 그런데도 수영장 안은 소란스럽다. 물소리 사이로 인사를 하고 이런저런 일상사를 나누는 말들이 들린다. 심지어는 사적인 사교모임도 만든다.
모든 운동이 그렇지만 특히 수영은 바른 자세가 중요하다. 바른 자세를 갖추면 속도를 내는 일은 시간문제다. 혼자 하는 운동이라 바른 자세를 갖추었는지 본인은 확인하기 어렵다. 강습할 때는 강사가 지적해 주지만 늘 함께 하지는 않는다. 보이는 대로 말해 줄 수 있는 타인이 필요하다. 혼자서 하는 운동이지만 무엇보다 타인이 필요한 운동이다. 함께 가야 멀리 제대로 갈 수 있다. 사는 것이 혼자인 듯 그렇지 않은 것처럼.
평생 숨을 쉬었지만 물속에서 숨 쉬는 법은 새롭게 어렵다. 음파음파 쉬라는데 잘 되질 않는다. 들숨에 물이 들어오고 날숨에 공기가 나간다. 배부르게 물을 먹다 보면 이러다가는 숨을 못 쉬어 죽든, 물에 빠져 죽든, 배불러 죽든, 어떻게든 죽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성인이 수영장 안에서 죽는 일은, 지병이 없는 한 거의 없다. 실은 죽음이 아니라 두려움과 맞서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두려움을 뛰어넘기만 한다면 새로운 자신으로 태어난다. 배우기 전과 배운 후의 나는 완전히 다른 나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새롭게 태어나는 일이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느낄 때는 무언가를 배워야 할 때다.
숨 쉬는 것이 자연스러워지자 새로운 어려움이 닥친다. 새로운 어려움을 만났다는 것은 그만큼 앞으로 나아갔다는 뜻이다. 수영 중에 닥친 새로운 어려움은 몸에 힘을 빼라는 것이다. 힘을 주지 않고 어떻게 팔을 젓고 다리를 찰 수 있을까? 자유 수영을 하러 간 어느 날, 무슨 배짱인지 쉬지 않고 수영을 했다. 얼굴에 열기가 확확 오르고, 숨이 거칠어졌다. 팔을 다시 들기도, 다리를 차는 것도 어려웠다. 잠시 선 채로 쉬고 다시 수영을 시작했다. 힘이 없으니 속도는 빠르지는 않았지만 자세는 왠지 더 반듯해진 것 같았다. 몸에 힘을 빼라는 말은 힘이 없을 정도로 연습하라는 뜻이었을까? 힘을 뺀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힘을 뺀다는 말의 의미는 온몸의 모든 힘을 다 뺀다기보다 힘을 줄 때를 안다는 것, 불필요하게 힘을 쓰지 않고 필요한 곳에만 힘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배운다는 것은 정해진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일이라 믿으며 나만의 수영을 만들어 간다.
수영은 헐벗어야 한다. 헐벗을수록 마찰이 줄고 편안해진다. 선수들은 헐벗기 위해 몸에 난 털까지 모두 제거한다고 한다. 현대의 운동들이 고도화된 장비를 장착하는 것과는 반대다. 좋은 장비가 좋은 기록을 낸다면 그것은 장비의 기록이지 사람의 기록은 아니다. 오로지 사람이 가진 것으로만 한계를 넘으려 노력하기에 수영이 매력적이다.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려고 도전하는 점이 좋다. 지금까지 이뤄낸 것이 있었다면 그건 장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도전과 노력 때문이었을까? 여건과 자신을 혼동하기 쉬운 시대다. 옷보고 사람 봤다고 해선 안 될 일이다.
베타버전 퇴직에 수영을 시작하고 정식 버전 퇴직 때까지 일 년 동안 수영을 했다. 일 주년 기념일에 함께 시작한 도반들과 밥도 먹었다. 처음 시작한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떠났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꾸준하게 수영장을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