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사람이 된 바깥사람 >
집사람이 되었다. 주된 활동 공간이 집이니 집사람이다. 따지자면 집안사람이 맞지만, 편의상 집사람이라 한다. 대응하여, 주된 활동 공간이 집 밖이라면 집바깥사람이다. 그렇게 불려야겠지만 흔하게 바깥양반이라고 불린다. 집바깥사람이나 바깥사람이라는 표현은 흔치 않다. 자연스럽게 집사람과 대응되는 말이 바깥양반이다. 그런데 왜, 집사람이라는 표현은 쓰면서 집안양반이나 안양반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을까?
집사람은 늘 사람이고, 바깥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양반이 된다. 물론 양반이라는 말이 온전히 좋은 의도로만 쓰이진 않는다. 눈을 부릅뜨고 격한 어조로 말할 때 붙는 양반은 비하의 의도가 분명하다. 그런데도 누구는 늘 사람이고 누구는 늘 양반이라 불리는 일은 껄끄럽다. 이유도 없이 상하를 나누는 것처럼 여겨진다. 집사람에 대응하여 굳이 써야 한다면 바깥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해하다.
활동 공간이 집안이 된 남성들이라도 온전한 집사람은 되지 못한다. 집안에 있어도 바깥사람이라고만 소개된다. 바깥에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집 안에서 뭐 하냐, 집 밖으로 나가라는 무언의 압박처럼 들리기도 하고, 때때로는 바깥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 집에 숨어든 것 같은 느낌을 갖게도 한다.
이런 상황은 여성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주된 활동 공간이 바깥인데도 집사람이나 안사람으로만 소개된다. 집사람인데 집안일을 하지 않고 관심조차 없는 사람이라는 의구심을 느끼게 만든다. 마치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냐는 부질없는 의심처럼. 차라리 집사람도 안사람도 아닌 와이프가 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집사람과 바깥사람으로 나누는 것이 필요할까? 나눠서 불러야 한다면 누가 집사람이 되고 누가 바깥사람이라 되어야 할까? 집과 바깥은 공간의 차이인데 왜 성별에 따라 나뉘는 것일까? 집사람과 집사람, 바깥사람과 바깥사람으로만 집을 구성하면 안 되는 것인가? 바깥사람이 집에 들어오면 집사람이 되고, 집사람이 바깥에 나가면 바깥사람이 되는 유연한 호칭은 어떨까?
어쩌다 집사람이 된 바깥사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분주하기만 하다.
이 글은 글쓰기 수업에서 쓴 첫 글이다. 종이에 펜으로 썼던 그대로 옮기다 보니, 도무지 봐줄 만한 글이 아니었다. 몇 번 손을 댔다. 손을 덧댈 때마다 글은 처음과는 다르게 변해갔다. 처음 쓴 글이 살아남을 확률은 십 퍼센트미만이라는 말을 실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