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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z교사 나른이 Dec 06. 2024

우연과 필연, 좌절과 성장 그 사이

2024년과 작별을 준비하며

 올해도 어김없이 연말이 도래한다. 시간은 살금살금, 때로는 성큼성큼, 가끔은 헐레벌떡 그러나 쉼 없이 흐른다. 사람들은 보송하게 마른 빨래를 개켜내듯 잘 꾸려낸 한 해를 차근차근 정리하며 한 해를 마무리할 준비를 해낸다. 그리고 새로운 다짐과 각오를 움켜쥔 채 선물처럼 찾아올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머지않아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며 아기방을 꾸미듯이, 방 안의 잡동사니들을 비워내고 요람 같은 새로운 물건들을 채워나가며 기대에 부풀듯이. 해묵은 잡념과 마음속에 흩뿌려진 잔해들을 몰아내고 희망과 소망으로 빈자리를 채워 넣는다.


 하루, 일주일, 한 달, 한 해 같은 시간적 개념은 본디 우주에 속한 것이 아닌 인간의 편의로 인해 만들어진 구분의 개념이라고 하지만 매 년 이맘때가 되면 일 년 동안의 삶을 성찰하고, 더 나아가 그동안 살아간 삶, 그리고 얼마나 주어졌을지는 미지수인 주어질 삶에 대해 사유한다. 하루하루를 놓고 보았을 때는 그저 상투적이며 진부하게 살아온 것만 같았다. 때로는 삶의 권태에 못 견뎌했고, 때로는 우주의 먼지만큼도 못한 가벼운 존재성에 대한 실효에 의문을 가졌다. 그럼에도 일 년을 뭉텅이로 놓은 채로 한 걸음 물러나 성찰해 보니 올 한 해도 많이 성장했고 단단해졌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그 당시에는 어떠한 의미나 이유도 찾지 못했던 사건들도 시간이 충분히 흐른 후 생각해 보면 나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자 무언의 필연에 가까웠다.




 어린 시절부터 거의 평생을 목포에서 보냈다. 당시엔 사람이든, 전시회든, 일자리든 무엇이든 차고 넘치는 수도권에 대한 동경이 컸다. 무엇이든 넘치는 수도권으로 가면 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여러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 확신을 가졌다. 목포에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가는 것만 같은 두려움의 잡초가 가슴속에서 싹트곤 했다. 두려움의 잡초는 지속적으로 뽑아내도 한숨 돌리고 나면 어느새 허리춤까지 솟아 있었고, 결국 고향을 벗어나고 싶은 갈망으로 귀결 지어지곤 했다. 현재는 나도, 부모님께서 계신 본가도 목포에 남아있지 않지만 결국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을 목포에서 지낸 것은 크나 큰 축복이었노라 주장하고 싶다. 


 마음먹은 언제든 바다를 보러 갈 수 있었고, 오랜 시간 동안 바닷가에 앉아 바다를 관찰할 수 있었다. 매 순간 미묘하게 변하는 바다의 잔물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되었으며, 바위에 부딪혀 결국 깨지고 쏟아지는 잔 파도의 작별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속이 답답하고 마음에 관용 따위 찾아볼 수 없는 벽돌이 쌓인 것 같은 날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트여 있는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학습했다.  수평선의 끝에 두 눈을 맞추어 보는 것으로 대자연에 대한 경외를 표현하는 법도 터득해 냈다. 인정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살 부대끼며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피부의 결을 따라 배워나갔다. 인생의 크고 작은 귀인들도 목포에서 만나게 되었다. 어떤 귀인들은 삶의 조각을 빛내주고 자연스레 삶의 물결을 따라 스쳐 지나갔으며, 또 다른 귀인들은 흘러가는 계곡 속의 조약돌처럼 그 자리에 남아 끊임없이 나의 삶을 다독여주고 다듬어주었다. 나는 목포에서 자라났기에 자연의 거대함에 겸허해질 수 있었고, 사람들의 인정에 대해 감사하는 법을 느리게 배워나갔으며, 수많은 귀인들로 인해 삶이 더 풍성해질 수 있었다. 이는 불명확한 '기회' 정도와 비교할 수 없는 행운이었다.


 임용고시에 한 번 낙방해 재수를 했고, 밤마다 문을 두드리는 불면증과 불안과 사투를 벌였다. 대학 동기들 대부분이 동일한 결승선을 바라보며 달리기에, 한 방에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교사가 된 동기들도 주위에 많았다. 합격한 동기들은 sns에 스스로의 합격을 전시하고 교사로서의 삶, 더 나아가 스스로 밥벌이를 해내는 떳떳한 직장인의 삶을 보여주곤 했다. 반면 나처럼 낙방한 동기들은 재수의 동굴에 파고 들어가 스스로 은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스스로 드러내는 지인들의 소식만 들려왔기에 나를 제외한 모든 동기들이 합격한 것만 같았다. 교육대학을 졸업한 동기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내 또래들은 아직 대학생이거나 취직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나이 상으로 전혀 늦지 않았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비교 대상은 합격한 동기들이었다.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집 앞 카페에서 커피를 홀짝대다가도 스스로의 신세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조급해졌고, 스스로에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조소의 질문을 던졌다. 넌 뭘 믿고 그렇게 커트라인 높은 지역을 쓴 거야? 왜 하필 교육대학에 간 거야? 너 빼고 다 자기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 같지 않아? 스스로를 겨냥했던 조소와 혐오를 꾸역꾸역 마셨다. 그 결과 불안으로 비롯된 불면과 강박 증상이 발현되었다. 시험을 재수로 끝내려면 학업에 매진해야 하는데, 깨끗지 못한 정신의 찌꺼기는 지속적으로 나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졌다. 


 의사의 도움도 받았고, 각종 약과 영양제의 도움도 받았지만 내면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스스로 극복해 나감으로써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마침내, 드디어, 기어코, 나는 그림자와 같았던 자기혐오, 불안, 불면으로부터 승리했다. 재수는 나름 고득점으로 화려하게 마무리지었다. 강박과 불면 같은 삶의 찌꺼기를 걸러내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지나치게 구석으로 밀어붙이지 말아야 함을 뼈저리게 배웠다. 잠을 하루이틀 못 자더라도, 내일의 공부는 다 물 건너갔다고 한탄하며 스스로의 나약함을 원망하지 않고, 잠 하루 이틀 못 자는 걸로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법을 터득했다. 일 년 정도 뒤처지는 것은 삶의 전반을 놓고 보았을 때 먼지 한 톨만큼 미세한 차이일 뿐이라고 스스로 다독일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수많은 정신적 어려움을 극복해 내고 길고 어두웠던 터널 같았던 스스로와의 사투에서 승리하고 나서야 앞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잘 달래주고, 안아줄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스스로를 믿고 기다려주는 인내를 배웠다. 절치부심의 심정으로 시작한 재수였으나 결국 그 1년은 자기혐오와 같은 찌꺼기들을 청소해 내며 필연적으로 나 자신을 신뢰하게 되었다. 내면의 어려움에 어떻게 귀를 기울이는지, 해지고 누더기가 되어버린 정신은 어떠한 걸음으로 다가가야 하고 어떻게 매만져주어야 하는지 마음 깊이 각인하게 되었다. 인생에 있어 새로운 형태의 어려움이 낯선 가면을 쓰고 등장해 위협하더라도 결국엔 이겨내리라는 확신이 자리 잡았다. 재수 기간 동안 결코 거저 얻을 수 없는 삶에 대한 융통성과 지혜를 터득하게 된 것이다. 




 이 외에도 우연이라는 무심한 표정으로 다가왔으나 결국엔 나의 삶의 시선을 한 층 더 높여 준 수많은 사건들, 사람들, 책, 그리고 장소들이 여럿 실재했다. 이들은 우연이라는 탈로 정체를 감춰낸 필연임이 분명했다. 수능 점수에 맞추어 이전에 꿈꾸어 본 적 없던 대학에 진학했고 그 대학은 자연스레 교사라는 직업으로 이어졌다. 당시에 수능 점수가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하고, 짙고 깊은 회환의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교사로서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의 어린 시절을 한 번 더 짚어본다. 천성이 게으르면서도, 완벽을 도모하고 불안까지 많은 나에게 누군가와 경쟁할 필요가 없는 직업은 그런대로 적절한 듯하다. 도서관의 높고 기다란 책장 앞에서 십 분이 넘는 시간 동안 배회하다 우연히 발견한 책은 나의 심금을 거칠게도 울려댔고, 결국 그 책은 인생 책이 되었다. 삶의 무료함으로 기대 없이 시작한 필사 모임에서 만난 언니와 세네 시간씩 떠들어도 어색하지 않은 면밀한 사이로 맺어졌다. 인터넷 후기조차 찾아보지 않고 허름하지만 그래서 친근한 간판을 걸어 낸 식당에서, 걸작이라고 칭해져야 마땅한 음식을 맛보고 감탄했다. 

 

 앞으로 마주해 낼 나의 삶은 수없이 많은 우연과 필연이 옹기종기 얽히고설킨 실뭉치와 같을 것이다. 씨실이라는 우연과 날실이라는 필연이 서로 맞닿아지고 수없이 교차해 나가리라. 어떠한 지점에서는 우연과 필연이 지저분하게 엉켜져 있으리라. 때로는 우연은 필연이 되고, 필연은 우연이 되어 서로를 감싸고 가두리라. 이를 찬찬히 풀어가고자 만지작거려도 애꿎은 매듭만 지어져 나를 한껏 약 올리리라. 또한 어떤 순간에는 씨실과 날실이 가지런하고 정갈하게 서로를 교차하여 윤택해 보이리라. 거슬리는 지점 없이 매끈하고 곱디 고운 삶은 아닐 것임을 안다. 그럼에도 이런 수많은 요소들이 더해지고 얹혀 나의 삶을 성장시킬 것을 믿는다. 나는 오늘도, 내일도 우연과 필연 속에서 방황할 것이고 성장과 고양의 과실을 쟁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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