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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z교사 나른이 Dec 13. 2024

인격의 독립성에 대한 사유

동생과 나, 그 독립성에 대하여

 나보다 딱 한 살 어린, 연년생인 동생이 있다. 함께여서 좋았던 기억, 서글프고 속상했던 기억, 의지가 되었던 기억들이 켜켜이 퇴적되어 있어 희로애락 중 하나의 단어로 콕 집어 설명하기 어려운 그런 사이다. 동생과 나는 서로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받아왔다. 동생은 나와 생김새도, 체구도 무척 닮았다. 어린 시절에는 나와 동생을 헷갈려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을 정도였다. 동생과 나는 외적으로 매우 비슷했으나, 외면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달랐다. 성격, 가치관, 관심사마저. 동생은 타고나기를 '평범'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례로,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고집이 무척이나 세서 일명 '황소고집'으로 유명했다. 게다가 굉장히 총명해서 주변 어른들로부터 늘 관심의 대상이기도 했다. 

 

 동생과 나는 연년생인 만큼 발달 수준이 비슷했고, 생활환경의 큰 부분을 공유했다. 신체적 발달 수준이 비슷하기 때문에 동생과 나는 모든 옷을 공유했다. 엄마가 새로 사주신 빳빳한 새 옷부터, 구멍이 송송 뚫린 내의, 그리고 양말까지, 내가 입는 모든 옷들은 '내' 옷이 아닌 '우리'의 옷이었다. 가끔 유튜브 동영상에 '자매 공감'이라며 언니의 옷이나 동생의 옷을 몰래 입다가 싸우는 내용의 영상이 추천 알고리즘으로 등장하곤 하는데, 나와 동생은 공식적으로 모든 옷을 공유했기에 이와 같은 경험이 전무하다. 어린 나는 선물로 옷이나 양말 같은 의류를 받는 것을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선물로 받은 옷, 양말은 어차피 동생과 함께 입어야 하는 공공재가 될 운명임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누가 선물로 공공재를 받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설상가상으로 동생은 옷에 음식을 잘 묻히고 흘리는 칠칠치 못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초등학생 시절, 새로 산 하얀 스웨터에 동생이 학교 급식으로 나온 카레라이스를 잔뜩 묻히고 돌아왔던 날, 나는 얼굴을 붉힌 채 동생에게 마구 화를 내었고, 엄마는 동생에게 너그럽지 못한 나를 야단치셨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한 번도 옷을 아껴 입지 않았다. 옷을 제아무리 소중히 다르고 아껴 입는대도 결국에 동생이 옷을 해지게 하고 더럽힐 것이기에 옷을 아끼려는 내 노력은 결국 무의미로 돌아가리라 체념 어린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신체적 발달 수준이 비슷했다는 사실보다 나를 더 괴롭게 했던 것은 동생과 지적 발달 수준이 비슷했다는 것이었다. 고향에서 똑똑하기로 이름을 날렸을 정도의 총기를 지녔던 동생은 지적 발달이 도드라졌다. 지적 발달 수준이 비슷했기 때문에 동생과 나는 함께 공부했다. 학업에 있어서 우린 그림자처럼 끈끈하게 달라붙어있는 경쟁자였다. 단, 그 경쟁에서 패배자는 거의 늘 나였다는 사실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엄마는 나와 동생을 나란히 앉혀두고 영어를 가르치셨다. 동생은 영어 단어를 암기하는 속도도, 영문법을 체득해 내는 속도도 남달랐다. 입력한 만큼 정직한 속도로 출력해 내는 컴퓨터 같았다. 동생보다 암기 속도도, 이해 속도도 조금 더뎠던 나는 엄마의 야단을 독차지했다. 동생과 나는 학원에서도 늘 같은 반으로 묶였다. -학원에 우리를 각각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기 힘드셨던 엄마는 동생과 나를 한꺼번에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엄마는 늘 학원 측에 동생과 내가 같은 반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결국 엄마의 입김이 들어간 결과였지만- 학원에서 보는 간단한 쪽지시험이나 단어 시험도 동생이 대부분 나보다 성적이 탁월했다. 이런 시험 결과들은 '언니보다 공부를 잘하는 애'라는 타이틀로 동생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드는 동시에 '동생보다 공부를 못하는 애'라는 타이틀로 나를 주눅 들게 했고, 물기가 덜 빠진 빨랫감처럼 나를 무겁게 눌러댔으며 축 늘어뜨렸다. 지금은 이미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멋진 직업을 가진 동생이 자랑스럽지만, 당시엔 영특한 동생의 존재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앞서 언급했듯 동생은 혀를 내두를만한 황소고집을 지니고 있다. 동생은 유순해 보이는 겉모습과 다르게 고집이 굉장히 세다. 어린 시절, 동생은 자존심 때문에 한 번 울음을 터뜨리면 상황이 해결될 때까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나와 다툼이 생기면 먼저 굽히고 들어가는 일이 없었다. 나는 '언니'라는 명칭에서 비롯되는 자존심으로, 동생은 특유의 자존심으로 늘 투닥거렸다. 우리 집은 늘 작은 전쟁터였고, 부모님은 스위스처럼 늘 중립을 외쳤다. 동생의 이런 고집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았다. 동생의 삶에 있어서 동생의 고집은 굉장히 큰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동생은 특유의 고집과 자존심으로 마음먹은 일은 사냥개가 한 번 눈독 들인 동물을 물고 절대 놓지 않듯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동생은 학교에서도 늘 최상위권의 성적을 놓치지 않았다. 성적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강한 만큼 스스로와 타협하지 않았다. 동생의 입시는 단연코 대성공이었다. 대학에 다니면서도 동생은 어학, 경제, 스포츠 등 영역을 넘나드는 자기계발을 멈추지 않았고, 현재도 여러 가지 도전을 진행해 나가고 있다. 동생 역시 나름의 고뇌가 잔존하며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히곤 한다고 하지만, 객관적으로 놓고 보았을 때 동생은 소위 '엘리트'다. 


 동생과 비교했을 때 나는 지나치게 평범했고 현재의 삶도 평범하다. 삶 속 주어진 퀘스트를 나만의 방식과 속도에 맞추어 간신히 해결해 나간다. 자기 계발의 가치와 의의에 공감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처럼 다짐만 수십 번 반복하기 일쑤다. 고집도 자존심도 내재하고 있으나 현실과의 타협력과 나태함이 나의 삶에 더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나는 그야말로 범인의 표상이다. 그렇기에 동생과 나는 같은 유전자를 공유했다는 사실은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동생과 함께 생활 반경을 공유했기에 동생과 나를 독립적으로 인식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피를 나누었고, 몸에 걸치는 옷마저 공유했으며, 심지어 공부도 함께 했기에 내가 동생과 완전 별개의 개체임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나는 이모양이고 동생은 승승장구하는 것 같을까. 왜 동생은 해내는 일들이 나에게는 벅차게만 여겨질까, 왜 나는 정신적으로 쇠약하고 미약한 자극에도 내동댕이쳐질까. 나의 나약함에 도돌이표를 엉성하게 붙여 자책에 자책을 반복하기도 했다. 동생에 대한 시샘이나 열등감 같은 모난 감정들이 얄궂게 돋아나기도 했다. 내면은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의 실체와 출처에 대해 분명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그런 모난 감정이 내 정신의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마저 인정하기 싫어 애써 부정해 댔다.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레 인정하게 되었다. 동생과 나는 같은 유전자를 얻어 탄생하였으나 결국은 독립적인 자아이기에 어떤 형태로든지의 다름은 필연임을. 흙을 머금고 바람을 쐬며 대자연의 품에서 함께 탄생한 식물들도 각기 다른 형태와 향으로 뻗어 나 지구의 다채로움에 기여하듯. 하물며 같은 종자의 씨앗에서 줄기를 솟아 올리고 잎사귀를 뻗어 낸 식물일지라도, 잎사귀가 달린 자태나 꽃의 크기, 열매의 개수가 제각각 다르듯이. 나와 동생은 엄연히 다른 인격체이고, 그렇기에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게 지당한 것이었다. 분리된 인격체이기에 삶의 형태나 가치관도 각각의 뚜렷한 색깔로 존재할 것임을. 동생을 나와 별개의 인격체로 존중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삶을 공유하고, 옷을 공유하고, 함께 공부하고, 같은 유전자로 탄생했다고 해서 우리 둘의 인격과 독립성이 뭉뚱그려지는 것이 아니리라. 이러한 깨달음의 기로에서 오히려 동생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게 되었다. 동생의 사고와 가치가 나와 다른 것은 당연하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음에 분노하기보다 인정하게 되었다. 동생의 삶의 방식이 나와 다른 것 역시 자연스럽다. 어설픈 조언을 하기보다 동생만의 삶의 여정을 응원하며 묵묵히 지켜보게 되었다. 


 험난한 세상에서 가족에게 기대며 가족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이러한 친밀함의 당위성은 단연코 명백하다. 그러나 때로는 가족과 나를 동일시해서 다툼이 생기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건 아닐까. 때로는 가족 구성원 한 명 한 명은 각자만의 삶을 영위하는 독립된 인격체임을 인정하고 한 발짝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건강한 가족관계의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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