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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z교사 김콩콩이 Nov 07. 2024

나의 안온함을 소망하며

외로움의 실상에 대한 단상

 어느 가을밤 청승맞게 울음을 터뜨린 적 있다. 휴대전화를 붙잡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독립을 배우지 못한 채 어미 곁을 떠난 짐승처럼 몇 번이고 외로워, 외로워, 외로워. 외롭다며 울부짖었다. 외로움은 숙명과도 같았고  홀로인 시간이 길었다. 존재조차 모르던 시골의 한 대학 기숙사에서 가족과 고향의 바다 냄새와 두고 온 어린 시절의 추억을 그리던 밤. 밤하늘엔 시골 특유의 쓰레기 태우는 냄새가 매쾌했고 후각을 자극하는 공기입자들은 나의 외로움을 건드렸다. 임용고시에 떨어져 재수를 하며 몇 날 며칠이고 달달 떨던 날. 누구도 대신 짊어질 수 없었던 너무나도 무거운 짐을 지고 두려움과 외로움에 부대끼던 밤들. 이불속에서 몸부림치던 그날 밤들은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아 숨이 막혔다. 직장인이 된 지금도 혈혈단신 타지에서 홀로 지내며 혼자 밥을 먹고, 집을 치우고, 책을 읽고... 어쩌면 외로움과 고독의 숙명이 뼈 깊숙이 각인된 것만 같다며 애절해했던 나날들.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책을 집어 들었다. 다른 이의 삶과 철학에 파묻히고 싶어. 내가 아닌 다른 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 그들이 되어 새로운 몸으로 세상을 만져보고, 물어 뜯어보고, 코를 킁킁 대고 냄새도 맡아보고 싶어. 그들이 경험한 세상을 나도 엿보고 싶고 그들의 대화에 살짝 귀를 대고 싶어. 문학 속으로 들어가 주인공이 되고 산문집의 작가의 마음속을 비집고 들어가 조금은 시니컬하며 우아한 사람으로 둔갑해보기도 했다.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모임에 나가 보았다. 어색함과 정적의 공기가 나와 그들 사이에서 빳빳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풍선을 눌러 공기 입자의 밀도가 높아지는 것처럼 공기는 텁텁해지고 숨이 막힌다. 억지웃음을 짓고 어색한 공백을 이기지 못해 실없는 소리만 주고받았다. 이건 도무지 내가 아니야. 여러 명의 사람 중 나의 진 면모를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실수하지 않으려고 뚝딱거리는 꼭두각시처럼 행동하는 게, 나마저 나를 외면하고 숨기려는 것만 같아 슬퍼졌다. 홀로 오롯이 받아 내는 고독보다, 군중 속 속에서 숨겨 내는 고독이 더 무섭다고 문득 느꼈다.

 외로움을 저버리기 위해 전화해 보았다. 먼저 엄마에게, 책 읽고 열심히 살면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다고 하신다. 응 알아요, 그런데 그 열심히 산다는 게 나에겐 참 버거워. 그다음 친구에게, 간단한 근황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음에 만나서 재미있게 놀자고 한다. 고마워, 그래도 당장은 네가 내 옆에 없어서 난 서러워.

 외로움을 떼어내기 위해 약속을 잡았다. 새로운 곳에 방문하고, 맛있는 것들로 스스로를 대접하고, 사는 이야기, 고민거리, 그리고 조금은 흉이 될 수 있는 이야기까지 온갖 이야깃거리들을 늘어놓으며 수다를 떨고, 반가웠다며 또 보자고 인사하고 헤어지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이제는 정말 혼자라는 생각에 침울해졌다. 외면했던 외로움이 스산한 그림자와 서서히 다가올 때의 공포감이란.

 외로워, 외로워, 외로워. 내면의 칭얼거림에 또 다른 자아가 성을 낸다. 언제까지 외롭다 외롭다 할래?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일 수는 없어. 인간이라면 언젠가는 반드시 혼자여야만 하는 시간들이 존재하며,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아픈 것도 무언가 이루어내는 것도 결국에는 스스로 해야만 해. 언제까지 고독이라는 자아연민에 절여진 상태로 휘청휘청 배회할래? 




 문득 생각했다. 나는 나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 있었는가. 마음의 모공을 세어 낼 정도로 마음을 빤히 관조한 시간이 존재하였는가. 나도 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무지한 채 남들로부터 위로받고 헤아려지기만을 수동적으로 바라지는 않았는가. 스스로에게 내던진 질문이 도돌이표처럼 되돌아오고 퉁겨져 나왔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아, 결국 나의 외로움은 나 자신으로부터 기인한 것이구나. 스스로를 외면하고 스스로의 이면에 담쌓아버린 결과 이토록 외로운 고독이 먼지 쌓이듯 쌓이고, 또 뒤덮여 지금의 무시무시한 실상이 창조되었구나.

나와 마주하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아직 스스로를 그대로 직면할 용기는 없다. 스스로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못난 마음이 빼꼼 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거리고, 그저 무마해버리려 했던 상처가 작은 틈으로 벌어져도 움찔하고 말아 버리는 나니까. 그럼에도 키보드를 두드려 글을 써 내려간다. 스스로의 친구이자 동반자가 되어주고, 내면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어루만져주기 위해. 나는 결국 언제나 나와 함께할 테니까. 나를 얼러만져 주는 건, 마음을 헤아려주는 건, 용기를 얻고 살아갈 힘을 얻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이루어야 할 일이니까. 나는 나와 대화를 나누며, 나를 더 헤아리게 될 것이고, 옅어져 가는 생채기, 새로 생겨난 생채기로 가득한 마음의 흉터를 덮어줄 것이며, 더 따뜻해질 것이며, 강해질 것이고, 결과론적으로는 더는 외롭지 않게 될 테니까. 아니, 가끔은 외로움이 밀물처럼 차오르더라도, 스스로 썰물을 만들어 낼 힘을 기를 테니까.

 나는 오늘도 나만의 방식으로 나의 안온함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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