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가옥.txt

처음처럼 다시

by 감성호랑이




부산은 한국에서 일본과 가장 가까운 도시이다. 부산에서 후쿠오카까지 거리는 247km 정도이며, 서울까지의 거리는 대략 325km라고 하니 서울보다도 더 가까운 거리에 일본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부산에는 일본의 흔적이 많다. 그중에서도 수정동에 위치한 정란각은 일본 특유의 건축양식이 남아있는 장소이다. 정란각은 1939년 일제강점기 때 철도청장의 관사로 지어진 건물이지만 해방 이후 한국인이 인수하여 기생집으로 운영해왔다고 한다. 당시 기생으로 일했던 사람들이 200명이 넘을 정도라고 하니 굉장히 큰 규모의 요정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지며 정란각은 존폐위기에 놓인 적이 있었다. 건물 자체가 일본식 가옥이다 보니 사람들은 일본의 잔재라며 사라져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실제로 정란각의 반 정도가 일반인에게 팔렸고 그곳에는 현대식 맨션이 들어서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반도 없애야 하는 게 맞을까?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우리에게 행한 행위를 생각한다면 일본식 가옥은 꼴도 보기 싫은 것이 당연한 일이다. 당장 눈앞에서 없애버려야 속이 시원할 것이다. 그럼 정란각이라는 건물은 영원히 사라져야 하는 것일까?

2010년 문화재청은 정란각의 남은 건물을 구입했다. 근대문화유산을 지키자는 뜻이었다. 그렇게 정란각은 다시 살아남아 사람들에게 공개되었다. 수정이라는 새로운 이름과 함께.







아직 더운기가 남아있던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 아내와 함께 수정에 다녀왔다.

지하철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으니 길모퉁이에 주변의 건물과는 다르게 생긴 건물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목조건물이라서인지 아니면 오랜 세월을 버텨온 탓인지 첫인상이 낯설지 않았다. 마치 시골 할머니 집에 갔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건물은 대부분 예전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고, 일부는 새롭게 공사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건물에 들어서자 할아버지 한분이 처음 오셨냐고 물어보았다. 그렇다고 하니 건물 곳곳에 대한 설명을 꼼꼼하게 해주셨다. 손님이 우리뿐이라서인지 정말 열심히 설명해주셔서 감사하기도 하고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할아버지의 설명이 없었다면 수정의 본모습을 보지 못하고 돌아왔을 것이다.







수정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장소는 2층이었다.

1층에서 계단을 오르고 난 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마치 오래된 목조건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 같았다. 따뜻한 햇볕 덕분이었을까? 새삼 모진 세월을 용케 버텨낸 수정이 대단해 보였다.







누군가의 손때 묻은 장소, 수정.

이 곳에서는 할아버지가 모르는 이야기도 무수히 많았을 것이다. 오랜 시간 수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던 수정은 아직도 그 자리에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도 변하고,

모든 것이 변해가는데


처음 그 자리에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산에 들린다면 수정에 한번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현재와 공존하는 과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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