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재회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 이름

새글 에세이시

by 새글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 이름


순전히 요란하게 창을 향해 달려드는

우박 때문이었습니다.

감정의 체증이 불러온 참사이기도 했을 겁니다.


우격다짐으로 굵기를 키우는 우박세례가

도대체 그냥 지나가기만 기다릴 수가 없어서

오래 저장되어만 있었던 이름을 만지작거렸습니다.


전화기에 초성 순으로 배열된 채

수많은 사람 중의 하나로만 남겨져 있어서

작정하고 찾기 전에는 지워지지 않은 채

기억되지 않을 이름이었습니다.


나도 그의 전화기에서 똑같이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이름으로 잊혀져 있을 것입니다.

지나고 나서는 사소한 말다툼일 뿐

죽고 사는 의견대립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쓸모를 다한 자존심 뒤로 밀어놓고 말았습니다.


미안했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이해가 될 듯합니다.

그냥 문득 우산살이 울리도록 퍼붓는

우박 때문이었다고 한번 볼 때가 된 것 같다고.

무심한 듯 통화버튼을 눌러야겠습니다.


그이도 어쩌면 지금 내 이름에 손가락을 대고

망설이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 이름 하나쯤 품고 사는 것은

누구나 가진 값진 자산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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