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마처럼
그녀는 최단시간에 나를 무력화시키고 말았다. 스스로 나는 단단하겠다고 다짐을 하며 꽤 많은 시간을 단련하며 지내왔다. 끊임없이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면서 삶에게 저항하는 삶이었다. 무너질 때마다 괜찮다고, 나는 나를 믿는다고 다그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평범한 일상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상을 지켜가는 것만큼 어렵고 소중한 것은 없다. 평탄하고 싶어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삶은 오르락내리락 굴곡이 심했다. 그럴수록 포기할 수는 없었다. 살아낸다는 것은 절박함이 개입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미래의 어떤 날을 꿈 꾸지는 않았다. 지금, 바로 나에게 주어져 있는 현실의 장막을 한 꺼풀씩 걷고 나가는 것도 벅찼다. 아물지 않는 상처가 많을수록 오히려 상처에 상처를 더하면서 고통에 대항하는 역설의 시간이었다. 내가 세워놓은 벽 안에 자폐를 선택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마주한 첫 순간부터 단호하던 벽이 무너져 내렸다. 나도 다른 삶들과 마찬가지로 내일을 바라보고 싶어 졌다. 내가 믿고 있는 나는 추상적인 가치였을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 안으로 누군가 속절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진솔한 믿음이 완성될 수 있으리라. 빠른 사랑고백을 했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많은 시간을 같이 해야 사랑의 감정이 생겨날 것이란 편견은 잘못된 관념이다. 찰나를 스쳐가는 극히 점 같은 순간에도 운명의 사랑은 시작될 수 있다. 필연의 그녀를 만났다. 감춰져 있던 내 안의 열정이 들끓는 마그마처럼 폭발했다. 그녀는 나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분화구였다.
"당신, 이제야 비로소 나는 세상과 맞설 힘을 내게 됐어요. 나의 세상은 당신을 만나기 이전과 이후의 시간으로만 분리가 돼요. 나의 이전이 외롭고 슬프고 고단했다면 이후는 당신과 함께 평안하고 달달하고 유쾌할 거라 믿어요. 그렇게 당신의 곁에서 생이 멈추는 날까지 당신을 사랑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