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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글 Jun 22. 2021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 소리 호루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 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날시예감

엘뤼아르의 자유를 표절했다는 의문을 가진 시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요즘 갑자기 유신독재의 시대도 아닌데 이 시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민주주의는 80년대 학창 시절 최대의 관심이었고 술이었고 밥이었다.

신문과 뉴스를 보면서도 제일 먼저 정치면과 사회면을 봤던 시절이다.

그러나 지금은 가장 보지 않는 면이 정치면이다.

민주주의는 표면적인 장식품이 돼 버린 건가, 아니면 잠시 실종신고 상태인가.

다시 민주주의여 만세를, 대한민국 만세를 외쳐야 할 때인가.

목이 말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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