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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글 Jun 21. 2021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는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르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날시예감

한 시절 우리의 젊음이 이랬었다. 술을 마시면 낮게 혹은 목소리 높여

동지가를 부르고 때로는 구성지게 슬픈 사랑노래를 부르기도 하며...

누군가는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위축되기도 하고 배척받기로 하고

그래서 기를 쓰고 그 운동에 참여하고 참여하는 척하고

우리 세대의 젊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가 어느 날 하나 둘 그 자리를 떠나갔다.

떠난 사람을 그리워 하긴 했어도 결코 비난하지는 못했다.

내 젊은 날의 초상 같은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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