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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글 Jun 30. 2021

흔들릴 때마다 한 잔

감태준

흔들릴 때마다 한 잔

감태준  



포장 술집에는 두 꾼이, 멀리 뒷산에는  단풍 쓴 나무들이 가을비에 흔들린다 흔들려, 흔들릴 때마다 한 잔씩, 도무지 취하지 않는 막걸리에서 말걸리로, 소주에서 소주로 한 얼굴을 더 쓰고 다시 소주로, 꾼 옆에는 반쯤 죽은 주모가 살아 있는 참새를 굽고 있다 한 놈은 너고 한 놈은 나다, 접시 위에 차례로 놓이는 날개를 씹으며, 꾼 옆에도 꾼이 판 없이 떠도는 마음에 또 한 잔, 젖은 담배에 몇 번이나 성냥불을 댕긴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포장 사이로 나간 길은 빗속에 흐늘흐늘 이리저리 풀리고, 풀린 꾼들은 빈 술병에도 얽히며 술집 밖으로 사라진다 가뭇한 연기처럼, 사라져야 별수 없이, 다만 다 같이 풀리는 기쁨, 멀리 뒷산에는 문득 나무들이 손 쳐들고 일어서서 단풍을 털고 있다  



날시예감

가을비 내리는 어디 골목쯤이나 되겠지. 선술집에 선 술꾼들이 일찍도 시작한 모양이다.

다 헛헛한 기운을 돋구어 주는 가을비 탓일 테지.

나무도 흔들리고 술잔도 흔들리고 술잔을 주고받는 두 꾼도 흔들리고 작은 길도 흔들린다.

흔들리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바람에 흔들리고 마음에 흔들리고 사람 따라 흔들리고 그리 사는 것이 인생인 것이지.

소주로 막걸리로 흔들리면서 추레한 주모는 흔들림을 평생 짐처럼 질머지고 왔을 것이다.

아, 나도 막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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