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을 열다

곁에 두고 읽는 장자

책을 열다

by 새글

곁에 두고 읽는 장자


곁에 두고 읽는 니체를 읽고 나서 꼭 읽어봐야겠다고 다짐한 장자를 드디어 구매했다.

<...... 문장이 매우 훌륭하며, 세상일을 지적하고 인정을 유추하여 유가와 묵가를 공격하였다. 그래서 당시의 석학이란 학자들도 장자의 예봉을 피할 수 없었다. 그의 말은 큰 바다와 같아서 넓고 심원했으며, 멈춤이 없이 분방했다. 그래서 왕공이나 대인들에게는 훌륭한 인물로 대우받지 못하였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장자가 비판을 했다는 유가의 최종판 <논어>를 읽어볼 생각이다. 다름이 뭔지 보고 싶다.



-파트 1 도의 세계(도를 얻고자 한다면)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냥 피상적인 어떤 느낌이 일어날 뿐이다. 有와 無가 본래 하나고 삶과 죽음의 구별도 무의미하고 자기 안에 갇혀서 사는 것이 인생인데 떨치고 나아가는 것이 道의 길이란다. 道는 圖와 달라서 보이지 않는 저 먼 언덕에 있어서 말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그것은 깨달음의 영역이며 상상의 결과물인 것으로 보여진다.


<도는 들을 수 없는 것이다. 듣는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도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본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도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말한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하루를 사는 하루살이는 내일이란 시간을 알지 못하며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 밖의 세상을 알지 못한다. 여름 한철을 사는 매미에게 겨울의 얼음에 대해 이야기해봐야 알리가 없단다. 하루를 살아도 道를 깨우치면 참된 시간이지만 천년을 살아도 道를 알지 못한다면 하루의 시간을 사는 것보다 못하다는 내용은 결국 인생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았는가의 문제라고 읽혀진다.


<대소장단 미추귀천을 가리는 세속의 잣대는 부질없다. 인생은 길이로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깊이를 재어봐야 한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살았느냐보다 어떻게 살았느냐이다. 얼마만큼 이뤘는가 보다 어떤 일을 이뤘는지가 그 사람의 인생을 말해준다. 인생은 성취로써 재는 것이 아니라 가치로써 재는 것이다.>


장자는 자연에서 도를 깨닫고, 무위(無爲)로써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삶의 속박에서 벗어나 즐겁게 자연을 누리는 지락(至樂)의 경지를 이야기한다. 자기義라는 생각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시간 밖의 시간에서 소요유 하고 (보통의 시간인 크로노스의 시간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신만이 가질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수직으로 통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에서 삶) 현실의 삶에 매여있지 말고 스스로 기적의 시간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도가 무엇인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어슴푸레한 형상만을 보았다. 아직은......



-파트 2, 무위의 세계(멈추고, 비우고, 내려놓아라)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집착도 미움도 기쁨도...... 마음이 보는 것, 마음이 가 있는 곳이 내가 가 있는 곳이다. 멈추고 비우고 내려놓으면 모든 것이 그 자체의 가치로 존재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즐거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장자가 말하는 무위는 그런 것인가 보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두라. 변형시키거나 자신의 판단을 개입시키면 본질을 왜곡시키고 화가 되어 돌아오게 된다.


<인위는 나무를 상하게 하고, 자연을 파괴한다. 하지만 나무가 상하면 인간도 상하고, 자연이 파괴되면 인간의 삶도 파괴된다. 인위는 일견 그럴듯해 보여도 결국엔 인간 자신을 헤치는 일이다.>


하지 않음으로 하는 것이 진정한 무위라고 한다. 역설과 역설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들이 道에 가깝다는 것인데...... 과연 현재를 사는 우리는 어떤가. 장자의 무위를 실천하며 살 수가 있는 것일까. 그러다 보면 몸 담고 있는 조직에서 무뢰배나 무모한 무능력자로 몰릴 지경에 처하게 되기 십상일 것 같다. 마음 수양으로 자신을 돌보는 것으로나 만족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심란하고 두려울 때 나를 내가 다스리는 잠언처럼 새겨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파트 3, 지락의 세계(길을 잃은 즐거움)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는다.


無라는 글자에 마음을 더했다 뺐다 오르락거렸다.

<사람과 화합하는 것을 사람의 즐거움이라고 하고, 하늘과 화합하는 것을 하늘의 즐거움이라고 한다. 하늘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에게 삶은 자연의 운행이요, 죽음은 사물의 변화일 뿐이다. 그는 고요할 때는 陰의 덕을 지니고, 움직일 때는 陽의 물결을 이룬다. 그러므로 하늘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은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비난하지 않으며, 사물에 의한 재난이 없고, 귀신을 탓함이 없다.>


<그대의 인생이 무덤덤하다면, 그 길이 어떤 길이지 한 번쯤 돌아보라. 혹시 세상 사람들이 다들 가는 길이라서 그저 따라나선 것은 아닌가. 그대가 즐겁다고 여기는 것들은 과연 진정한 즐거움인가, 혹은 여건이 변하면 덩달아 변해버리고 마는 것들은 아닌가.>


길을 잃지 않는 사람은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지도 발견하지도 못한다고 한다. 길을 잃을 줄 알아야 자신의 현재를 깨우치고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는 말로 해석을 해본다. 길을 잃지 않으려고 익숙한 길을 붙들고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집착이다. 자만이다. 무모한 자기 방어다.


장자의 無는 無가 아닌 것 같다. 아무것도 없음, 아무것도 채우려 하지 않음, 아무것도 탓하지 않음. 그것은 어쩌면 없어야 어떤 것도 받아들여 채울 수 있다는 역설이 아닐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없다는 것이 불행의 단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수 있는 바탕이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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