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열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
-류시화
오랜만에 맛있는 책을 만나다. 류시화의 시집이나 산문집, 명상집은 나와 궁합이 맞는 듯하다. 큰 기대 없이 책장을 넘기다 무릎에 가지런히 손을 올려놓고 집중을 하게 된다. 엄청난 사건을 나열하면서 번잡스럽게 이야기를 만들어 가지 않는다. 잔잔하고 소곤거리는 듯한 어투의 글이 머릿속을 지나서 가슴으로 폭 파고든다.
<사람들은 화가 나면 서로의 가슴이 멀어졌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 거리만큼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면 두 사람의 가슴은 아주 멀어져서 마침내는 서로에게 죽은 가슴이 된다. 죽은 가슴에겐 아무리 소리쳐도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더 큰 소리로 말하게 되는 것이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부드럽게 속삭인다. 두 가슴이 매우 가깝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소리를 지르며 말을 크게 하는 것은 상대방으로부터 내가 멀어지는 것이 두려워 가까이 가고자 하는 역설적 행동이라는 말에 감응한다. 누군가로부터 나는 멀어지고 싶지 않다. 누군가로부터 항상 가까이 인식되고 싶다. 멀어짐이 두려워 행동과 소리가 커지는 것, 잊힘이 두려운 역설인 것이다.
오랜만에 미각을 자극하는 책을 만났다. 전반부에 머물러 있지만 갈수록 풍미가 더해져 입맛을 다시며 책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끼며 천천히 책을 맛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