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주의보

새글 에세이시

by 새글

호우주의보


우산을 낮게 내려봤자 바짓단이 젖는

범위까지 가리지 못합니다.

아스팔트 위에 물의 길이 생겼습니다.

아마도 삽시간에 거침없는 흐름을 보여줄 것입니다.

이미 찰박거리는 신발로 걸음을 빨리 해보지만

호우의 등에 올라탄 강풍이

우산의 나아감을 허락해주지 않습니다.

빗방울이 빗줄기로 기세를 키울 때는

길에 나서는 게 아니었습니다.

믿었던 큰 우산이 회오리치는 바람에

오히려 뒷걸음을 치게 합니다.

부러질 듯 버텨주는 우산살이 안쓰럽게 보입니다.

그러나 번져드는 진한 습기를 견딜 수 없었습니다.

떠나면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믿지 않았지만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 내심 굳센 척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다림은 포기하고 말아야 했어도

그리움까지 끊어내지는 못했습니다.

가슴이 쏟아질듯한 절정의 호우주의보를

그렇게 나는 나에게 발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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