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제법 소란스럽다. 유달리 잦은 비가 여름을 건너 가을의 초입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산을 쓴 사람들의 종종거리는 발걸음이 빗소리와 함께 잘박거린다. 누군가는 어딘가 정한 목적지를 향해 가고 또 다른 누군가의 걸음은 여유롭게 빗속을 걷는 것 자체가 목적일 수 있을 것이다. 각자의 취향에 맞춰 가을을 영접하고 있음이다. 이번 비를 기점으로 가을답지 않게 무덥던 기온이 급강하할 거란 일기예보를 접하면서 계절의 시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느낀다.
비가 들이치는 창가에 서서 열이 올라오는 속을 진정시킬 참이다. 침체된 경기에 맞춰 주머니를 헐겁게 다녀야 했다. 살이가 뻔하다.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목전에 다가온 추석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인심은 곳간에서 나온다는데 빈 곳간만 소유한 소시민들은 주머니를 열 수가 없는 처지다. 언제쯤이나 경기가 회복될지 희망고문에 시달리며 사람들의 얼굴이 무표정이다. "한 국가의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게 된다."는 누군가의 뼈아픈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수준이 저질스러웠다고 과거형을 쓰면서 자책을 하게 된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지도자가 더 낳을 것 같다는 사람들의 아우성에 동감을 한다. 놀랄만한 인사들이 놀랄만한 자리에 앉아서 놀랄만한 언행들만 일삼는 현실에 놀라고만 있다. 진영 간의 싸움은 점입가경이고 편가름이 막장까지 가고 있다. 나라가 두 동강이 나있음을 누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설상가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부정하는 세력이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다. 외세의 침략에 맞서 조국을 지켰던 이들마저도 이념의 갈라치기 희생양으로 평가절하를 서슴지 않고 저질러댄다. 자랑스럽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내세우기도 창피하다. 역사가 망가지고 있는 나라의 미래는 없다. 고개를 들기가 수치스럽다. 정치, 경제, 사회면의 뉴스를 보기가 겁이 난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이슈들을 들고 나와 목청을 시끄럽게 개방하고 있는 이들이 침묵할 수밖에 도리가 없는 국민을 대신해 나라의 주인이 되어있다. 망조다. 빌어먹을 나라가 돼버렸다. 대안은 없고 다툼만 난무한다. 타협이 사라지고 극강의 대치가 대세다. 얼굴 성형으로 외모가 비슷해지듯 정신성형으로 개탄스러운 의식성형도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불평이나 해대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으로 손가락질 대상으로 전락할지도 모르겠다. 한가하게 망해가는 나라걱정은 하지 말자. 치솟은 물가에 적응해 나가야 하고 꼬박꼬박 걷어가는 세금과 공과금 앞에 유리지갑을 열어야 한다. 하루를 잘 살아내야 다가올 하루를 또 살아낼 수가 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나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내 코가 석자다.
하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지출만 하듯 정신도 불필요한 곳에는 팔지 말자. 울화가 치밀면 정신이 피폐해져 나만 손해다. 해로운 소리에는 귀를 막고 오해가 생길 말은 입 밖으로 꺼내놓지 말자. 되지도 않는 논리를 그럴싸하게 엮어놓은 글은 읽지도 말자. 진행 방향이 뻔한 연애소설이나 읽으며 시간을 때우는 편이 정신건강에 더 좋으리라. 오싹한 스릴러물이나 보면서 현실을 회피하는 것도 좋겠다. 남 걱정, 남 탓이나 할 때가 아니다. 수월하지 않은 이 시대를 살아야 하는 나에게 모든 위로와 신경을 집중하자. 시끄러운 곳은 피해 가고 미끄러져 넘어질 것 같은 길은 돌아가자. 무탈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