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글 에세이
안개 밖에서
멀리서 바라보는 안개는 몽환적이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시야가 흐려진다. 새벽과 아침의 사이에서 안개는 제풀에 사라져 간다. 하지만 피부를 관통한 서늘함을 지닌 채 색깔옷을 입고 있는 나뭇잎을 안개와 함께 바라보는 가을 아침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안개가 끼는 날이 잦은 황룡강변을 걷는다. 안개 밖에서는 안갯속을 알지 못한다. 안개가 가리고 있는 속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안으로 들어가 봐야 한다. 아니면 무작정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안개는 안과 밖을 구분하는 가림막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벽처럼 단단히 오고 감을 막는 것이 아니어서 언제든 원하기만 하면 안과 밖을 오갈 수가 있다. 시도를 해보지 않고서는 궁금증을 풀 수 없다. 경험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두려움을 버려야 한다. 누구나 처음은 번거롭고 두렵다. 용기를 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달라지기를 원하는 것은 헛꿈에 불과하다. 안개 밖에 있는 나와 안갯속으로 들어가는 나는 질적으로 다르다. 보이지 않는다고 무시하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보이는 것 밖의 가려진 세계를 알아야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안개를 빠져나와 아침의 산책을 마무리한다. 오늘이 깔아놓은 생활의 안갯속으로 들어가야 할 때다. 산다는 것은 안개 밖과 안을 수시로 드나드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하루낮과 하룻밤이 다르게 기온이 직하향 하는 가을에 적응하기 위해서 가죽잠바를 옷장에서 꺼내 입는다. 시월이 다 가지도 않았는데 가죽옷은 조금 이르지 않느냐는 잔소리 같은 걱정의 말을 들으면서도 그냥 웃어넘긴다. 나이가 들수록 때보다 조금 일찍 반응하는 것이 멋 부리는 것보다는 먼저라는 것이 생활의 지론이다. 형식을 중시하는 것보다는 무엇을 하든지 실용을 더 우선시한다. 맵시 있게 옷을 차려입는 것도 좋지만 모양은 떨어지더라도 계절에 맞는 기능을 갖춘 옷차림을 하는 것이 좋다. 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겉모습은 보기에 추하지 않을 정도면 된다고 생각을 한다. 과한 치장은 관계에 선입감을 주게 된다. 반대로 추레하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의심이 된다. 함께 해야 할 용건과 시기에 맞는 깔끔함이면 충분하다. 대화의 내용도 겉치레를 앞세우기보다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길 원한다. 예의를 차리는 것은 상대방의 말에 집중을 해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다고 할 말만 서로 하는 극히 사무적인 성향은 아니다. 주고받아야 할 본안의 대화가 마무리 지어지면 삶의 고됨에 대하여, 살아가는 일상에 대하여 허심탄회하려고 노력을 한다. 시간의 변화에 맞춰 변해가는 몸의 구조에 대하여, 관심이 가는 시사에도, 정치적 입장에 대해서도 서슴없이 의견을 내고 듣는 편이다. 저마다의 기준을 대수롭게 인정해 주듯 나의 기준도 지켜가고 싶다.
오늘도 안개 밖에서 안으로 들어선다. 안개가 가리고 있는 세계가 조금씩 눈에 보인다. 안개가 품기 전에 이미 내가 알고 있던 풍경이다.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한순간에 폭발적으로 변하지도 않는다. 안갯속을 들고 나며 단단한 변화를 만드는 것은 오로지 나의 역할이다. 안개를 잘 헤쳐나가고 나면 하루를 마무리하며 다시 안개 밖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