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글 에세이
단풍앓이
가을앓이가 다시 시작되었다. 몇 년 동안 따라다니던 이별들과는 멀어진 듯하다. 한 해가 다르게 시간이 만들어주는 망각의 요술주머니에 그리움이라든지 아쉬움들은 봉합되어 잊혀져 간 것이다. 그러나 단풍이 시작되고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의례히 몸이 격렬하게 반응을 한다. 관절 마디마디에 바람이 든다. 목이 붓고 기침이 잦아진다. 한 일주일 심하게 몸살감기를 앓고 나서야 가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몸 구조를 타고났다. 밤새 시간단위로 일어나서 뜨거운 물을 마시고 무릎이며 팔다리를 주무르며 밤을 샜다. 가을밤은 깊고도 을씨년스러워서 쉽게 날이 밝지 않는다. 이불을 둘러싸고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다 떨어지는 창밖을 바라보는 밤의 고요는 길고 길다. 가로등 빛이 유난히 밝은 밤이다.
아침이 되면 병원부터 가야겠다. 주사 한 대 맞고 약의 힘에 의지해야 그나마 하루라도 덜 고달파진다. 자연치유를 기대하기엔 이제 적잖은 나이가 되었다. 이깟 몸살감기라고 무시할 수 있는 나이 때가 있긴 했다. 그러나 이제는 관리를 부실하게 하면 치명적인 위험요인이 되는 세월을 살아버렸다. 몸 상태를 과신하지 않고 매사에 조심해야 할 때다. 제 주인이 아픈지를 아는지 발치 밑에서 강아지가 얌전히 두발을 모은채 엎드려 있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대견하고 의지가 되는 녀석이다. 강아지와 놀아주기 위해서라도 기운을 차려야겠다.
약 먹으며 무리하지 말고 잘 쉬어주면 괜찮아질 것이란 의사의 처방전을 받았다. 이미 알고 있는 처방전이다. 단풍이 절정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병이다. 어쩌면 마음이 단풍앓이를 준비하기 위해 몸의 균형감에 교란을 일으키는지도 모르겠다. 화려한 나뭇잎들의 변화에 맞추기 위해서 내 몸에도 단풍이 드는 것이라 생각해 본다. 몸이 직면한 단풍앓이를 마치면 선운산 도솔천이나 백양사 애기단풍을 영접하러 가야겠다. 지나고 나면 그날의 단풍이 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웠듯 오늘에 있는 내가 제일 건강한 상태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