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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글 Nov 18. 2023

첫눈 오는 날에

새글 에세이

첫눈 오는 날에


첫눈이 요란하게 시작하고 있다. 경험상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첫눈이다. 처음이란 것은 역시 준비되지 않아 불안정스럽다. 그러나 처음이 있어야 비로소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시작은 처음의 신호가 되고 처음은 시작의 동반자다. 눈이 오기 시작한다. 겨울이 시작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겨울이 품고 있는 이야기들을 눈 속에서 꺼내보아야 할 모양이다. 결코 달갑지 않지만 내 삶의 연속선 중의 한 부분이다.


눈 오는 날의 평화로운 풍경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날씨가 심란하다. 첫눈을 기어이 이렇게 수선스럽게 세상을 향해 보내야 했을까. 하늘의 뜻은 오래 살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알 수 없다. 요사이 시끄럽게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와 비슷하다. 비가 오다가 해가 비치고 바람이 세다가 잦아들고 눈발이 날리다가 구름이 걷힌다. 십일월 중순의 날씨는 종잡지 못할 변덕의 총화를 보여준다. 아마 십일월을 대하는 마음의 변화를 그대로 날씨가 대변하는 것이리라. 지나갔지만 지워지지 않고 있는 시간의 변곡점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어지럽기 때문이다.


비가 눈이 되고 눈이 풍경을 바꾼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앞날에 집중하는 다른 상태가 되고 싶다. 다만, 지나간 시간이 씌워놓은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겠다는 기약할 수 없는 기대에 매달려 날씨 따라 좌고우면 하지 않기를 응원한다. 십일월의 첫눈 오는 날에 처음 맞는 눈처럼 한고비를 넘어서는 시절의 삶을 시작한다. 지나간 부끄러움에 잡혀 다가올 시간이 떳떳한 시간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살아갈 시간의 길이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방향만은 잡고 있다. 첫눈처럼 시작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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