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 옆에 모기시체

새글 에세이시

by 새글

변기 옆에 모기시체


생존의 조건이 충족된 장소였을 것이다.

적절한 습도와 온도가 보장된 곳,

기름진 음식으로 채운 배를 하루에 한두 번

오래도록 끙끙거리며 삶의 잔재를 뽑아내려

안간힘 쓰는 나에게 슬그머니 다가와

허벅지 뒤에서 허리둘레를 줄였던 식사를 할 수 있는 곳.

어둠과 빛의 순간이 적당히 조화를 이루고 있는

좌변기 뒤에서 맛난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 꿀 발라놓은 장소에서 시체가 돼버렸을까.

커버가 내려진 변기 옆 바닥에 쓰러져

몸통이 바싹 말라있는 모기를 보았다.

살기 위해 치열하게 날개를 쓰지 않고

한자리에 안주한 최후가 비참하다.

날것이 날아다니기를 멈추면 근육량이 빠지고

기능을 잃어가는 날개가 결국 퇴화되어

먹이활동마저 멈추게 했을 것이다.

몸 쓰기가 귀찮아 다리근육이 빠지고

끝내 움직임이 둔해진 나를 섬뜩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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