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글 에세이시
케리어가 부푼다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 짐을 싸고 있냐는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머릿속은 몽롱하다.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케이어를 열어놓고 소품들을 챙겨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걸 어쩌랴. 케리어를 봉인할 때까지 빠지면 아쉬운 작은 것들까지 빈틈없이 준비하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다. 떠나기를 마음먹은 때부터 이미 나는 여행을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막상 출국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 탑승을 위해 줄을 서게 되면 설렘은 반감될지도 모르겠지만 여행을 마칠 때까지 들뜸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속옷이 한 개 빠졌네, 웃옷과 바지 색상이 어울리지 않네, 저리 비껴 보라며 케리어에서 나를 밀쳐내는 목소리가 달콤하다. 짐짓 지켜보기 신공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숨길 수 없는 감정의 파고가 높아지는 짐 싸기를 지켜보며 가보지 않았던 풍경 속으로 미리 들어선다. 마음이 부풀려지는 크기에 비례해 케리어가 부푼다. 간헐적인 여행전야를 주기적인 시간으로 나에게 선물할 것을 가만히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