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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글 May 13. 2024

배신자에게

새글 에세이시

배신자에게


기분이 무거운 날엔 마음에 바람을 쐬야겠다는

속들여다 보이는 핑계를 달고 차를 냅니다.

허름한 냄새가 싼티를 가중시키는 돼지내장국한 그릇 시켜놓고 

대낮부터 소주 한잔에 온갖 추접스러운 뒷담화를 담아내 비웁니다.

처지가 비슷한 사내들이 한 자리씩 차지한 채 

어깨를 늘어뜨리고 앉아 각자의 소주잔에 

연신 거부할 수 없는 싼 내가 뭉큰거리는 삶을 따르고 있더군요.

고급진 먹거리에는 마음이 편히 반응하지 않아서 돼지기름 냄새에 

쩔어있는 오래 묵은 탁자에 턱을 괸 채 자세가 흐트러져야 힐링이 됩니다.

나이프와 포크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깨끗말끔한 곳에서는

왠지 거북스러워져서 미각이 기능을 발휘하지 않습니다.

닳아빠진 다리 모서리에 양은 철판이 덧대져 있는 데다가 

니스칠마저 바랜 앉은뱅이 의자에 엉덩이를 걸쳐야 심신이 편해집니다.

아무렇게나 놓인 젓가락, 숟가락이 소리를 내는 식탁이어야

비로소 익숙한 헐렁함이 예상할 수 있는 정해진 맛의 풍미를 믿게 됩니다.

성질이 무던하지 못해서 사실이 아닌 작은 음해에도 

급하게 반응을 하는 나를 맨 정신으로 제어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래서 모욕감에 인내의 한계가 불가마처럼 열기를 뿜어낼 때면 

마음에 찬바람을 일으키려고 오후의 휴가를 내서 

못돼 먹은 배 씨 성을 가진 신자에게 찾아가 낮술을 마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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