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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옥 Oct 27. 2017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84

연주회가 한참이다. 무대가 오목거울 볼록거울처럼 보이더니 콘트라베이스가 귀 기울이며 듣는 여인의 조각상으로 보인다. 커다란 콘트라베이스 3개는 성부, 성자, 성령으로 합쳐진다. 하나다!


나는 이상하게 저 끝에서 울리는 북소리에 마음이 간다. 음악을 들을 때 마이크 앞에 선 가수나 바이올린 연주자, 첼로 연주자 등의 흐르는 ‘음’보다는 저 뒤에서 둥둥 탁탁 토끼와 거북이 움직임처럼 들릴 듯 말 듯 크고 작게 들려주는 북소리의 걸음걸음이 좋다. 여러 개의 악기를 앞에 두고 두어 개의 봉으로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하면서 끊을 때 끊어주는, 그 가볍고도 무거운 둥~ 둥~ 소리가 듣기 좋다. 용기가 있고 결단이 있고 질서가 있다.


오늘의 가수가 마이크 앞에 섰다. 오직 자신 속에서 나오는 목소리에 힘을 쏟는다. 첼리스트는 첼로 하나에 매달리고, 바이올리니스트는 귀에 들리는 음을 잡으려 온힘을 쓴다. 드러머는 자유롭게 자연스럽게 ‘음’을 내주면서 받쳐준다. 빠르게 느리게 크게 우렁차게 받쳐주는 그 ‘음’에 빠져든다. 뒤에 있는 음,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음, 보이지 않는 음은 힘이 된다.


TV에서 연주회를 볼 때마다 뒤쪽을 살펴본다. 드러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들의 의복과 머리 스타일은 특이하다. 대게 사자머리다. 옷은 위에서부터 뒤집어쓴 자루(?) 옷, 열 손가락에는 크고 작은 반지가 번쩍거리고, 손과 발이지만 이상하게 온몸으로 두들기는 듯한 모습은 마치 바다에 빠진 사람이 헤엄쳐 나오는 모습 같다. 가는 음일 때는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끊어준다. ‘단칼에’라는 말처럼 단칼에 딱 내리친다.


몸의 동작은 다 보여도 눈빛, 눈의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검은 선글라스는 그 어떤 동작보다 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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