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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옥 Feb 16. 2018

황홀한 상상

#95

베토벤이 청력을 잃은 후에 작곡하고 연주하는 모습을 담은 영화 <카핑 베토벤>을 보았다. 예민하기 짝이 없는 여러 악기의 음률과 각 사람에게서 나오는 화음을 듣고 있으려니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열심히 음표를 그리면서 음의 순서를 알려주는 조수 안나 홀즈의 표정과, 지휘봉을 크게 작게 높게 넓게 움직이는 베토벤의 비장한 얼굴을 보면서 순간 얼마나 황홀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베토벤은 마음속 깊은 음을 들었을 것이다. 그의 상상대로 여러 악기가 이어지듯 연주되는 소리는 그녀에게도 똑같이 들린다. 열려 있는 귀라면 상상과는 다른 음일 수도 있다. 그 많은 단원이 최선을 다해 연주했어도 상상의 황홀감에는 못 미칠 수 있다.

 

작가들이 작품을 구상한다. 수백 번씩 구상하고 쓰기 시작하고 만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내 속의, 내 생각 속의 그것은 아니다. 송두리째 나오지 않는다. 현실과 상상은 너무 거리가 멀다. 상상은 현실이 될 수 없다.

   

베토벤은 연주자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자신의 음을 내준 것으로 듣는다. 그 음은 저 깊은 곳의 나만의 음이다. 그 음을 귀가 아니라 온 마음으로 듣는다. 얼마나 황홀했을까.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곡을 만족하며 듣는다.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감정, 나타낼 수 없는 음을 듣는다. 상상했던 대로 듣는다.


지금 내 앞에는 버려야 할 짐이 여기저기 쌓여 있다.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진작 버렸어야 할 짐들이다. 왜 못 버리고 끌어안고 있었나. 무슨 미련인가. 내일 30여 년을 살던 집을 떠난다. 버리자, 미련 없이. 귀를 버렸기(?) 때문에 말년을 황홀하게(?) 지냈을 베토벤이 감히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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