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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옥 Jan 31. 2018

소식과 이야기

#93

스마트폰의 위력은 어디까지일까? 언제부터인지 어딜 가나 남녀노소 구별 없이 이것을 들고 있다. 세대가 내려갈수록 이것이 없으면 숨을 못 쉬는지 잠시도 한눈팔지 않고 들여다본다. 매스컴에서는 스마트폰 때문에 버스 안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릴 때, 건널목을 건널 때, 자동차를 운전할 때 사고가 잦다고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자동차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것만 목격돼도 경찰이 벌금을 물린다. 편한 대신 그만큼 조심해야 되고 절제가 필요한 것 같다.


우리 집은 아파트 4층인데 밤이면 밖에서 걸으며 통화하는 소리에 잠을 설칠 정도다. 소리는 위로 올라온다. 하하 웃어도 허공에 대고 웃는다는 걸 안다. 그저 그런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고, 이 삼복더위에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틀자니 관절이 시리고 부채를 들자니 팔목이 혹사를 당한다. 어디서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때면 무슨 사연이 저리 많을까 궁금해진다.


보건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그리 즐겁지 않다. 급한 모습도 아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표정인데 스마트폰 너머의 누군가에게 그냥 이야기하거나 카톡을 보낸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내릴 곳을 놓칠 정도다. 그리고 승차했어도 모든 승객의 귀를 짜증나게 할 정도로 높은 소리, 웃는 소리 내어가며 이야기를 끊지 않는다.

옛날에는 사계절이 뚜렷했다. 시간도 뚜렷했다. 봄에는 깊은 밤에 봄비 오는 소리와 더불어 꽃향기가, 여름에는 녹음과 벌레 소리가 청청했고, 가을에는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이 굴러가는 소리, 박자도 정확한 귀뚜라미의 소리가 들려왔다. 듣고 있을수록 더욱 애잔해지고, 뭔가를 그리워해야 된다는 조바심까지 일어나는 가을밤의 정취, 겨울에는 싸늘한 공기를 대면하는 문풍지 소리에 이불깃을 여미며 책 읽는 재미가 여간이 아니었다. 시간은 어떤가. 12시가 지나면 온 세상이 깜깜했다. 그리고 조용했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먼동이 터 오르는 걸 느꼈다. 지금은 12시도 1시도 2시도 3시도 대낮같이 밝고 시끄럽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귀가 안 들리고 눈이 깜깜하다면 하루를 어떻게 구별할까? 밤이고 낮이고 시끄럽고 환한 이 세상을.


50여 년 전, 3월이다. 당시 난 가정형편상 대학을 포기하고 취직자리를 구하려고 ‘타이핑’을 배우고 있었다. 그때는 학원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타자강습소’라는 말로 통한 것 같다. 깡마른 타자 선생은 강습 시간마다 하얗고 뾰족한 손으로 내 타자기의 A, B, C를 탁탁탁 누르며 ‘왜 빨리 못 치느냐’고 면박을 줬다. 딴 친구들은 화려한 명동 한복판에 자리 잡은 상업은행, 제일은행 등으로 뽑혀들 갔다. 앞이 아득한 나는 종로 4층짜리 빌딩 꼭대기에 있는 타자강습소를 나와 재동까지 터벅터벅 걸어 친구 집에 들렀다.


친구는 마침 잘 왔다면서 진달래꽃빛 투피스를 입어 보이며 입학식에 입고 갈 건데 어떠냐고 묻는다. ‘넌 얼굴이 하얘서 너무 잘 어울린다. 참 예쁘다’ 했다. 입학을 축하하는 가족 모임에 나가야 한다는 친구를 뒤로하고 개나리가 만발한 골목길을 내려왔다. 번지르르한 기와집들은 조용하고 꽉 잠긴 대문에 달린 커다랗고 둥근 은빛 문고리가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이 났다.


재빨리 골목을 벗어나 보니 버스정류장이다. 그냥 섰다. 버스를 타겠다는 생각도, 안 타겠다는 생각도 없이. 내가 걸어 나온 길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자 사람들 속에서 한 여인이 눈에 띄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30대 초반인 것 같다. 그때는 내가 어려서 더 젊을 수도 있다. 그저 내 눈에는 아줌마였다. 타이트한 스커트가 유행하던 시절인데 펑퍼짐한 긴 치마에 얇은 스웨터를 걸친 그 여인은 두 손에 든 종이를 잘게 찢고 또 찢어가며 천천히, 느리게 걸어온다. 가까이 온 그 여인의 손에는 줄 쳐진 편지지가 있다. 눈은 허공을 응시하는지, 아니면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을 생각하는지 멍해 보인다. 손에 든 편지지를 찢고 또 찢으며 내 곁을 느리게 스쳐간다. 여인이 걸어온 거리와 걸어가는 거리는 흰 종이로 꽃길을 이루어놓은 것 같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로 쳐다보며 소곤거린다. 혼자인 사람은 ‘어떻게 하나?’ 하는 표정이다. 난 눈을 감았다.


스마트폰의 시대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편지를 잘게 찢으며 정신없이 걷는 그 모습을 요즘 시대에 대입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연출될까? 종이와 기계의 대결인데, 힘없는 종이가 길거리에 제격 아닐까?


사연이 바람에 날아간다. 그리고 뭇사람들의 신발 바닥에서 짓이겨간다. 고통스러울 때는 더 큰 고통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그때 나에게 위로를 주었던 그 여인, 그녀의 편지. 땅바닥에 마구 뒹굴었던 그 봄의 하얀 낙엽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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