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깜빡

# 25

by 김경옥

다시금 병원 순례가 시작됐습니다. 이번에는 눈이 불편합니다. 엘리베이터 안에 층수를 얼른 누를 수가 없습니다. 돋보기를 여러 각도로 돌려야 겨우 보일 때도 있습니다. 뭔가가 가리고 있는 듯해서 자꾸 눈을 비비게 됩니다.


안과에 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림잡아 십여 명이 앉아 있습니다. 모두 묵묵히 머리 숙이고 휴대폰과 놉니다. 조용합니다. 의사 선생님이 “깜박” 하는 소리는 새로운 환자가 앉을 때마다 이어집니다. ‘같은 소리를 하루에 몇백 번 해야 일과가 끝날까? “깜박” 소리가 몇 번쯤 들리면 내 차례가 올까?’ 생각하다가 높다랗게 달린 선반에 꽂힌 책들을 보았습니다. 쭉 둘러보니 옛날 동화책들입니다.

할아버지는 갓을 쓰고, 할머니는 치마저고리 아래 복주머니를 달고, 머리 땋은 처녀, 아니 총각들이 등에 나무를 지고, 오두막집 기와집에서 둥근 밥상에 위에 둥글게 쌓아 올린 밥그릇, 서당 훈장님의 기다란 담뱃대 앞에서 책상다리하고 글을 배우는 아이들이 나오는 동화책들 중 아픈 엄마를 살린 효심 지극한 아이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두메산골에 엄마와 아들이 살았습니다. 몹시 가난해서 굶기를 밥 먹듯 하다가 엄마가 병이 들어 누웠습니다. 아들은 매일매일 산신령님께 엄마의 병이 낫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어느 날 산신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산딸기와 잉어를 잘 끓여 그 국물을 마시면 너희 엄마의 병이 나을 것이다.”

눈보라가 치는 날 아이는 동저고리 바람에 짚신을 신고 산 넘고 강 건너 떠났습니다. 갖은 고생 끝에 산딸기와 잉어를 가져다가 정성껏 끓여서 엄마를 살렸다는 이야기입니다. 바빠서인지 아니면 관심이 없어서인지 동화책이 선반에 높다랗게 올라간 이유를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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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이 공존하는 마트에 가서 모든 물건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요즘 아이들이 이 동화를 읽으면 무슨 생각을 할까? 그 시절 사람들이 요즘 세상을 내려다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이 시대의 효자효녀는 어떻게 부모를 구할까? 그 시절 그 글을 썼던 작가는 지금이라면 어떤 식으로 효자상을 그릴까?

“깜빡깜빡” 내가 깜빡 자리에 앉을 차례가 되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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