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사랑을 할 줄 몰랐습니다. 아니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무조건 좋아만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붉은 빛깔의 사과를 베어 먹으면 그 새콤한 첫맛에 사과를 좋아하게 됩니다. 영롱하게 영근 포도를 보면 통통한 그것을 깨물며 영화 보는 걸 좋아하게 됩니다. 그 순간은 세상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너대니얼 호손의 ≪주홍글씨≫에서 아기 아버지가 누구인지 말하면 가슴에서 ‘A’ 자를 떼어주겠다고 제안하는 사람들에게 헤스터는 “주홍글씨는 너무 깊이 낙인찍혀 있어서 떼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저는 제 자신의 괴로움은 물론 그 사람의 괴로움까지 참아내려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열쇠 구멍만큼의 시야로 내 처량한 상상력을 믿고 수없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나로 인하여 순전히 주관적인 견해로 만들어진 작품 앞에서 늘 주눅이 듭니다. 왜 만들었는지, 어떠한 것을 뜨거운 열로 태웠는지 묻는 듯합니다. 나의 작품에 대한 사랑은 속절없는 사랑, 처량한 사랑, 가난한 사랑, 초라한 사랑입니다.
사람은 주어진 운명의 힘에 밀리더라도 벗어나려고 스스로 노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든 작품은 그 자신이 어떻게 노력을 하겠습니까. 만들어진 그 모양대로 그 짧은 생을 빛도 없이 소리도 없이 마감합니다.
작업실에 가면 가장 먼저 커피 물을 올리고 음악을 틀고 비닐 속에 갇혔던 작품을 벗기고 “애야, 난 너와 이렇게 마주 보며 앉아 있을 때가 제일 좋구나”라고 합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대상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시원한 공기가 필요한지, 마실 물이 필요한지… 생각하니 내 울타리 안에서 모두 가려버리고 세상을 자연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거센 바람을, 불꽃같은 태양을, 직립하여 딱딱 꽂히는 비를 가려주었습니다. 마땅히 그가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하고 가려지니 시들시들 생명력이 사라집니다. 사랑을 배우지 못한 주인을 만난 탓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