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계절 중 겨울이 좋고 밤이 편합니다. 꽝꽝 언 추운 겨울밤이 좋습니다. 창문 옆으로 커튼을 조금만 젖혀도 강한 바람이 소리치며 불어닥치는 밤, 주머니 속같이 아늑한 내 방이 나를 책임져주는 기쁨에 용기가 생깁니다. 뭔가 할 수 있다는 힘에 이끌려 마음과 머리와 손이 바빠집니다.
망망한 바다 위에 눈사람을 만듭니다. 친근하고 재미있는 동화 속 눈사람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 힘들었던 것들, 이따금 나를 괴롭혔던 것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가슴앓이를 모두 뭉쳤습니다. 금세 집채만 한 커다란 덩어리가 되면 파도에 떠나보냅니다.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만든 작은 덩어리들은 힘껏 수평선 쪽으로 던져버립니다. 불쑥불쑥 일어서는 분노를 손바닥으로 아프게 때리며 만들고 바다에 꾹꾹 눌러 밀어넣습니다. 열정이 아닌 욕망이 허황된 망상이 덮치면 네 발 달린 붉은 눈의 사람을 만들어 코앞에 둡니다.
어느새 잠이 들었습니다.
낮의 흔적을 차근차근 따진 후에 바다로 보내버리니 한층 너그러워진 나를 발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