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드라마를 보면 죽자 살자 세상에 자기들만 사는 것처럼 요란하게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합니다. 한 달 두 달 세월이 가고 서서히 실망이 커져갈 때 아가들이 생기고 아가의 울음소리가 커질수록 이들의 목줄이 시퍼렇게 일어나도록 큰 소리로 울부짖습니다. 이래저래 이렇게 참고 저렇게 이해하고 찌푸리며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그냥 살거나 얽매이기 싫은 성격들은 자기 길을 갑니다.
생기가 없어진 것입니다. 무서운 세월이라는 것이 그렇게 만든 걸까요. 아니면 인간의 둔감증은 세월의 본질일까요. 사람뿐이 아닙니다. 그렇게 갖고 싶던 붉은 벽돌의 이층집도 아름다운 레이스 커튼도 집 안의 특이한 장식품들도 처음의 기분은 없어져버립니다. 지루함과 권태로움이 차곡차곡 쌓이고 시간은 무심하게 지나갑니다.
나의 가장 큰 기쁨이자 즐거움은 읽고 싶은 책이 있다는 것,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요. 내 시들지 않는 기쁨이 기다리고 있으니 있는 정성, 없는 재주 다 부려서 식구들 맛있게 배불리 먹이고 설거지를 속속들이 깨끗이 하고 식탁을 빡빡 소리가 나도록 빛나게 닦고 꽃병에 물을 갈아 아스피린 한 알을 떨어뜨려 식탁 가운데 예쁘게 놓습니다. 빨래비누로 행주를 깨끗이 빨아 물기를 꽉 짠 다음 탁탁 구김 없이 털어 줄에 널어놓습니다. 그러고는 내 몸 씻으러 목욕탕으로 들어갑니다. 오늘의 책임이 끝나고 책 볼일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 때의 시원한 만족감, 나만이 아는 행복, 물줄기가 궁금증과 설렘의 합창 소리로 들립니다.
넓은 초원에 빨갛게 익은 양귀비꽃이 한창입니다. 양귀비꽃을 꺾어 돌멩이가 엉성하게 쌓인 커다란 아궁이 위에 솥을 얹어 펄펄 끓는 물에 양귀비를 넣고 양털에서 뽑은 실타래를 마구잡이로 넣어 푹푹 삶았습니다. 이렇게 삶은 실들을 넓은 바닷가 모래 위에서 말리면 천연염료가 됩니다. 그 누구도 물의 양, 꽃의 개수를 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색은 영롱했습니다. 양귀비를 뜯는 손의 느낌이요, 눈에 보이는 물의 양입니다.
서점에, 그 방대한 숲속에서 책을 찾아낼 때 매스컴도 물론 도움이 되지만 내가 겉장부터 시작하는 첫 구절, 중간 중간 읽다 보면 내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나와 인연이 닿는 것입니다.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맨 꼭대기에 꽂혀 있는 DVD는 글씨도 안 보이니 꺼내기도 힘듭니다. 내 눈높이에 맞는 곳에서부터 골라도 집에 들고 와 틀어보면 열 개 사면 다섯 개쯤 나하고 맞으면 큰 성공입니다. 가장 흥미로울 때는 책으로 흠뻑 취했는데 영화로 나온 것, 그런데 열이면 아홉은 책만 못합니다. 화가 날 때도 있습니다. 이해는 합니다. 그 미묘한 감정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내가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책을 읽기까지 영화를 보기까지 워밍업이 필요합니다. 집중하고 몰입하기 위해서는 오늘의 내 할 일을 완벽(?)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행복합니다. 내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의 파랑새로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