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무덤이 부러울 줄이야

#76 Gate of Heaven Cemetery

by 김경옥

프리웨이를 벗어난 자동차가 옆길로 빠진다. 달려가는 앞차 번호판만 바라보던 눈길들이 새로 들어선 길로 옮겨진다. 우리나라로 치면 4차선쯤 됨직한 2차선 길 양편으로 오래된 굵은 나무들이 죽 늘어서 있다. 그 길로 또 한참 가다 오른쪽으로 완만하게 꺾어 들어가니 옛날 영화에서 보던 고풍스러운 집들이 높지 않은 산등성 위에 세워져 있다. ‘조용하다. 이 길, 저 집들, 맑은 하늘에 떠 있는 깨끗한 하얀 구름들은 변함없겠다’라고 생각하는데, 눈앞에 분수가 높게 솟아오른다. ‘웬 분수지?’ 하며 분수를 끼고 크게 도는 찰나, 정말이지 넓디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햇살을 받은 풀들은 너무나도 깨끗하고 아름답다. 널찍한 들판에 깔린 잔디 곳곳에 꽃들이 꽃병에 꽂혀 있고, 꽃다발이 겹겹이 누워 있다. 주차장에는 검은 차들이 줄지어 멈춰 선다. 아, 이곳은… 나는 이 아름다운 평원에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비가 와야 할 시기가 훨씬 지났으니 메마른 땅, 먼지가 가득한 공간에서 무더위에도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벌레들에게 늙은 피가 뭐 그리 좋다고 여기저기 뜯기고 물렸다. TV에서는 안된 소리만 들려주고 모든 상황을 가증시킨다. 가뜩이나 오지 않는 잠, 청하고 애원해보아도 소용없다. 그러니 생각은 부러운, 부러웠던 그곳으로 옮겨간다.


나는 시댁도 친정도 모두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한 공원묘지에 모셨다. 그래서 세상에 이런 곳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가파른 동산을 기어 올라가다시피 할 필요도 없고, 제사상을 차릴 필요도 없다. 들판에 누운 이를 생각하며 기도하고 찬송하고 꽃을 놓아주면 다 되는 장례식이다. 숲 속 넘어 멀리 보이는 새의 깃털처럼 우뚝 솟은 빌딩은 육체에서 빠져나간 영혼이 날갯짓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시원하게, 훨훨, 그리고 안녕히. 솟아오른 물 사이사이로 정사각형 문들이 모여 있다. 분수를 보느라 미처 못 봤는데 화장한 시신의 가루를 넣은 곳이란다. 흰 대리석 문의 손잡이는 두툼한 황금색 반지 모양(우리네 목욕탕 옷장이 생각났다)이다. 마치 신부의 하얀색 면사포와 금색의 반지 같다. 석양을 듬뿍 받은 흰색과 황금색은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해 보였다.


다른 세상으로의 결혼식.

그래, 어쩌면 이곳에서의 이야기가 끝나고 저곳에서의 이야기가 새롭게 시작되겠구나.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길이 이리도 깨끗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순간 그 널찍함이, 시원함이, 단순함이, 그 평화로움이 가슴으로 밀려왔다. 이 땅의 삶은 어찌 되었건 누구나 고달픈 것, 그러나 마지막은 이토록 아름다운 평원에 네 활개 펴고 누울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을까. 지는 해를 받은 우거진 나무들과 흰 대리석 문과 황금색 손잡이는 유난히도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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