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옥 May 06. 2018

햇살처럼 살아본다

# 닫는 글

몸은 쉬고 싶다고 하는데 잠이 오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책을 다시 집어듭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삶의 본질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몇백 년, 아니 그 이상의 글인데도 이 밤에 읽으면서 옳다구나! 합니다. 과거는 죽지 않습니다.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지 결코 죽지 않는 과거 덕분에 우리에게 참삶의 길을 인도해주는 문학, 음악, 미술 등에서 수많은 과거를 감상하고 논하고 따르며 확신하고 참고하여 공부합니다.


한밤중 아주 오래전 떠난 그분들의 책을 읽고 그림을 보며 위로를 얻습니다. 음악을 듣습니다. 자연의 소리, 우주의 모든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천국에서 지옥까지 빠르게 또 느리게 마음 구석구석을 감싸안습니다. 세포 깊숙이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명화집을 봅니다. 한참씩 들여다봅니다. 구석구석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거기에서 삶의 기쁨, 슬픔, 아름다움, 그리움을 봅니다. 옛날의 양식들, 자연의 멋스러움, 신비함, 웅장함을 봅니다. 옛글을 읽으며 지혜를 얻고 오늘을 살아가고 옛 음악을 들으며 감정의 풍요로움을 느낍니다. 옛 그림을 두 손으로 쓰다듬으며 냄새를 맡습니다. 미래의 변화된 모습을 그려봅니다.


몸이 먼저였는지 마음이 먼저여서 몸이 아팠던 건지 아리송합니다. 늙는다는 것이 천둥번개 같은 청년 시기의 고민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삶이란 청년이건 노년이건 뼛속 깊은 아픔을 견뎌내는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몸이 본격적으로 아파옵니다. 아프던 곳이 좀 나았나 싶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곳이 아파옵니다. 그야말로 머리끝부터 저 아래 있는 발가락까지.


매일 밤 에드워드 뭉크의 슬프고 우울한 죽음의 그림자가 내 주위를 맵돕니다. 사람이 늙으면 병들다 죽는, 그 당연한 수학공식을 자꾸자꾸 가르쳐줍니다.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습니다. 자연이 새록새록 위대해 보입니다. 폭풍에 씻기고, 눈 쌓이는 나무들의 늠름함과 무게감, 깊고 깊은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들의 신선함과 당당함이 부러웠습니다.

용기가 없으면 영광도 없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산은 홀로 있어도 조바심치지 않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나와의 대화가 길어집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것에 대한 후회, 해야 될 일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서 이 시간 나를 아이로 만들어주길 원합니다. 세상 따라 흔들리는 갈대 지팡이를 의지하고 휘둘리며 살아온 그 많은 세월… 침침한 작업실에서 홀로 조바심치며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혼란스러움의 널을 뛰며 <평화> 시리즈를 만들었습니다. 오십여 년 동안 1천여 점의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이유 모를 외로움을 달래가며 기둥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지붕 없는 기둥이 되어 있군요. 비와 바람을 막아주지 못하는 ‘평화’, 안식 없는 ‘평화’를 만든 셈이죠. 참으로 헛된 만족인 세월을 보냈습니다. 먼 곳에서 파랑새를 찾았습니다.


긴 삶의 고통 중에서도 인생의 끝자락인 겨울에 만나는 육신의 고통을 통해 인생을 새롭게 생각할 기회를 만났습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2011년 깊은 가을 에세이집 ≪소통≫을 낸 지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소통≫에서 소통하지 못한 글을 다시 한 번 쓰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버킷리스트>에서처럼 죽기 전에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매일 밤 생각했습니다. 참 많더군요. 하지만 털어내고 덜어내도 시간 따라 계절 따라 기다리는 나의 책을 덜어낼 수 없더군요. 활기차게 신나게 소통하고 싶습니다. 죽기까지.


매거진의 이전글 머릿속이 축농증에 걸린 듯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