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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옥 Apr 30. 2018

머릿속이 축농증에 걸린 듯하다

#102

몇 줄 쓰다가 뭔가 결심한 듯 급히 일어납니다. 거실로 가서 멀쩡히 꽂혀 있는 장미꽃도 항아리에 다시 담아들고 한 바퀴 빙 돌며 어디 옮길 때 없나 보다가 그대로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경대 앞으로 가 물끄러미 내 얼굴을 들여다봅니다. 립스틱을 꺼내 여러 번 천천히 바릅니다. 빙 돌아서다가 목걸이 찾아 애써가며 목에 척 하니 걸어봅니다. 부엌으로 갑니다. 안쪽 구석에 얌전히 있는 화분을 보고 별안간 바짝 안아들고 수돗가에 놓고 물 귀한 나라인 아이티를 생각하며 넘치고 넘치게 부어줍니다. 다시 책상으로 와서 멀쩡한 연필을 놓아두고 몽당연필 찾아 정성껏 천천히 깎습니다. 잊어버린 듯 급하게 서랍을 열고 반지를 이것저것 끼어봅니다.


자, 이젠 앉아서 연필을 들자. 아니 이런 날 촛불을 켜야지. 성냥을 탁 그어 장미꽃 만발한 초를 켭니다. 책상에 마주앉습니다.



‘아, 비 오는 하늘을 눈 오는 하늘을 좀 보았으면….’


내 책상에서 하늘을 본다는 것은 내 삶에서는 무리일까요? 망상과 공상에 잠기니 잘 깎은 연필은 자꾸자꾸 밀려납니다. 문득 일어나 부엌에서 엄마의 밥그릇, 점심 드실 밥그릇을 또 닦고 또 닦습니다. 뭔가가 나올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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