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보고 말하고 싶다

#101

by 김경옥

자꾸 냉장고가 고장 난다. 얼지 말아야 할 곳은 꽝꽝 얼고, 얼어야 할 곳은 슬쩍 언다. AS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희 제품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디까지나 성실하게 임하겠습니다. 지금의 전화는 〇〇법에 의해 녹음되고 있습니다”라고 죽 나오다가 “어느 부서는 몇 번, 또 몇 번” 하면서 이어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내 딴에는 숫자를 찾아 빨리 누르고 별표 또는 우물정자 누르고, 물건번호를 또 누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고객의 주민등록번호… 식으로 나가는데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다시 전화해서 누르기를 여러 번 했다. 7을 눌러야 하는데 바로 위 4를 누를 때도 있었다. 서서히 얼굴이 붉어지며 혈압이 오른다. 침착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내 잘못도 있지만 요는 빠른 말과 숫자다. 아무리 말이 빨라도 70여 년을 듣고 말했는데….


오래전 개인적으로 영어를 배울 때 “영어단어 500개만 알면 일상생활하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으니 500개만 열심히 외우세요”라고 하길래 열심히 쓰면서 외웠다. 단 500개였다. 그것에 비하면 내가 아는 한국어는 무궁무진(?)하다. 심지어 몇백 년 전 말도 안다. 옛날 소설도 척척 읽고 뜻도 감지한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 말에는 왜 이리 주눅이 들까. 기계가 말하는 게 낯선 걸까. 사람끼리의 말은 감정이 섞여서 대강의 이야기에도 그 뜻을 알 수 있는데, 기계가 하는 소리는 높낮이도 없고 음폭도 똑같아서 일까. 기계에서 사람 소리가 나오지만 사투리도 없고 말하는 이의 나이도 가늠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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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세상에 나온 이래 나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정보의 시대가 열렸다. 무엇 때문에 모든 것을 알아야 할까. 알아서 무엇에 쓰자는 걸까. 가뜩이나 복잡한 세상인데. 너무 많이 알면 오히려 진가를 알기 어렵다. 그 어떤 것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옛날같이 물건을 산 가게에 가서 “사장님, 냉장고가 이러저러하는데 한번 봐주세요” 부탁하고 집으로 같이 온다. 그리고 고친다. 끝. 이런 세상이 나한테는 꼭 맞는다. 난 발품 팔아 사는 시대에 살았다. 이렇게 기계와는 힘드니 어찌할꼬.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나는 표정 보며 사람과 말하는 세대로 끝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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