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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옥 Apr 22. 2018

빨간 자전거

#100

자꾸 짜증이 나서 옛날 노래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를 흥얼대면서 마음을 가라앉힌답니다. 엊저녁 영화 <안개 속의 풍경>를 다시 보았습니다. 무언가 얻을까, 위로받을까 하면서….


어린 소녀 볼라와 남동생 알렉산더는 막연히 독일에 산다는 아버지를 찾으러 안개 속 같은 여행을 시작합니다. 오늘 내 마음은 유랑극단 청년에 가 닿았습니다. 오레스테스의 독백이 어쩜 내 작품생활과 딱 들어맞는지, 작품을 만들 때의 심정이라면 정직한 대답일 것입니다.


“너희는 참 이상해. 급히 떠나려는 것 같으면서도 갈 곳 없는 것 같고 그러면서도 어디든지 계속 가고 있어. 목적지는 있니? 난 허무를 향해 기어가는 달팽이야. 어디로 가려는지 모르겠어. 한때는 안다고 생각했지. 그러나 난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라.”


보일 듯 잡힐 듯한 영감, 나를 포함한 이 지구상의 모든 작가가 겪는 고통이고 절망이고 그 속의 깨끗한 희망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이번에 빨간색 자전거를 하나 마련했습니다. 시커멓고 녹슨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항상 보는 듯 안 보는 듯 지나치던 자전거상회의 빛나던 빨강 자전거입니다. 어쩐지 열정의 소식만 전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군요. 보란 듯이 당당한 발걸음으로 역에 들어섰습니다. 기차의 검은 연기에 더러워질까봐 슬쩍 역장실 앞에 세워두고 가슴에 편지를 안고 빨리빨리 걸어갔습니다. 기차 화물칸 옆으로 붙은 빨간색 우체통 뚜껑을 열고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편지를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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