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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친하게 지내자

조금 질척대는 엄마지만, 그래도.... 

  얼마 전 외국에 사는 시누네가 한국에 한 달 정도 들어왔다. 시누네에는 우리 딸보다 3살 많은 여자아이가 있다. 고종 사촌언니는 우리 딸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으로 등극했다.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데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몇 시간 정도 인형놀이를 해보더니, 딸은 바로 마음을 정했다. 

  그래서 이제 우리 딸은 시누네가 머무르는 할머니 집에서 잠을 잔다. 나는 엄마에서 등하원 이모 정도의 위치가 되었다. 딸아이를 어린이집에서 하원 시키면 어머님 댁에 데려다주고, 아침에는 옷가지를 챙겨서 어머님 댁에 가서 딸아이를 다시 어린이집에 데려다준다. 나는 등 하원 때라도 잠깐씩 얼굴을 보지만, 남편은 딸아이 얼굴을 못 본 지 며칠 되었다. 어제는 딸은 잘 있냐고 내게 물어보았다. 


  나는 운전을 하면서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매년 새해가 되면 운전하는 시간에 영어도 좀 듣고 교양도 좀 쌓으리라고 다짐해보지만, 늘 소용이 없다. 어제는 운전을 하면서, 우리 딸이 나중에 외국에 있는 고모네서 산다고 하면 어쩌나, 라는 걱정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나는 어릴 때 저러지 않았는데. 나는 좋아하는 사촌언니가 있긴 했어도, 엄마 껌딱지여서, 저렇게 며칠씩 엄마와 떨어져서 지내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누구든 옆에 있는 사람에게 좀 질척대는 편이다. 신혼 때는 퇴근하고 집에서 남편을 만나면, 남편의 동선을 쫓아다니며 그날 있었던 일, 그날 들은 생각을 이야기했다. 남편이 대답을 잘해주었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엄마에게 그랬다. 자취를 할 때 뭘 먹어야 할지 결심이 서지 않으면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이런 반찬, 저런 반찬 기타 등등이 있는데 뭘 먹으면 좋겠냐고 물어보는 날도 많았다. 엄마가 좀 어이없어할 때도 있었다. 

  나에 대해 변명을 하자면, 나는 주변 사람들을 좀 귀찮게 하는 편인 게 확실하지만, 그래도 주변 사람들에게 약간의 정서적인 충족을 주지 않을까,라고 생각도 한다. 왜냐하면 나는 내 옆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을 들게끔 해주니까(?)! 남편은 내가 손이 좀 많이 가는 사람이라고 하긴 하지만, 또 그런 역할에 어느 정도는 만족(?)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나만의 생각은 아니겠지?ㅜ) 

  나는 내심 나의 딸이 나 같은 사람이기를, 결혼 전부터 기대했었다. 결혼 전에도 늘 딸이 있기를 바랐고, 딸과 내가 친구 사이처럼 지낼 수 있기를 바랐다. 심지어, 친구 사이 같은 모녀가 되기 위해, 딸이 나에게 반말을 써주기를 바랐는데, 존댓말을 쓰면, 존댓말을 쓰지 말라할 수도 없고, 어떻게 대응을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봤다(안다. 나도 내가 쓸데없는 걱정이 많다는 것을...). 

  그렇지만 나의 딸은, 내 바람과는 다르게 아마도 독립적인 성향의 사람인 듯하다. 아마도 나의 딸은 자신의 점심 반찬을 물어보지 않을 것 같고, 이성친구에 대한 미묘하고 알쏭달쏭한 감정을 말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내가 푼수처럼 이 말 저말 딸아이에게 할까 봐 걱정이다. 사실 생각이 나서 말인데, 무슨 대화를 하다가 '엄마가 없어도 괜찮아?'라고 물어보니, 우리 딸이 엄청 쿨하게 '그럼 아빠랑 살지 뭐.'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모녀관계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ㅋ 사촌언니가 오기 전에는 그래도 내가 일등으로 좋은 것 같았다;;;)

  사람은 다 다른 법이니까. 자식을 있는 그대로 예뻐해 주어야지. 그리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옆에서 응원해주어야지. 그리고 그래도 성향이 맞아서 결혼한 남편에게 더 잘해줘야겠다. 베프에게 딸아이가 유학 간다고 할까 봐 걱정이라고 이야기하니, 자식만 보내는 건 너무 민폐라, 딸아이만 보낼 수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현실적으로 조언해주었다. 딸아, 그래도 미성년인 동안에는 엄마랑 베프처럼 친하게 지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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