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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를 그만 둘 수는 없지만

덜 건조하게 살기로 결심

서른 하나에 변호사가 되어서 올해 마흔 하나가 되었다. 맡은 일이든, 회사든, 애를 키우는 것이든, 하루하루는 열심히 살았는데, 방향성이 없다보니,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것 같아, 솔직하게 종종 조금 속상하고 조바심도 났다.

  올해 브런치북 응모는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끝까지 해낸 내 인생의 보기 드문 일이었다. 나는 원래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몰입해서 해내는 스타일이 아니다. 브런치북 공모를 결심하게 된 것은 어떤 변호사님 덕분이었다. 사적으로 많이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 중 한 분인데, 같이 대본을 써보자고 어느날 제안을 주신 것이 글쓰기의 시발점이 됐다. 갑자기 나는 에너지가 넘쳐 대본집과 시나리오 캐릭터책을 사들였는데, 대본쓰기는 멘땅에 헤딩하기여서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다. 각자 방향을 틀어, 나는 브런치 공모전에 응모해보겠다고 말했다.

  나만의 브런치북을 기획하고 주제를 찾고 글을 쓰는 일은 재밌었다. 사실 스스로 상당히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쓰면서 출판으로까지 이어지는 상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딸한테도 '엄마가 요새 책을 쓰려고 하고 있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정도였으니.

  그런데 막상 완성하고 보니 뭐랄까. 부족한 것을 대번에 알았다. 남편과 가장 친한 친구, 그리고 공모전을 결심하게끔 해준 변호사님, 세 분에게만 브런치를 공유했다. 부끄러워서 어디 말할 수가 없었다. 남편에게는 글을 좀 읽어보고 부족한 점을 말해달라고 채근했는데, 남편이 계속 미뤘다. '역시, 내 글을 재미가 없구나. 안되겠다'라고 한숨을 쉬자, 남편은 '나는 지금까지 재미를 위해 글을 읽어본 적이 없어'라고 말했다. 아, 번짓수가 틀렸구나.

  가장 친한 친구는 조금 더 친절했다. 카톡으로 공유를 했는데 '잘 읽었다'면서 좋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지만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어, 며칠 후 전화를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그런데 글은 어땠어?'라고 이야기를 꺼냈다. '소소하게 잼있게는 읽었는데... 근데 내가 요새 재미있게 봤던 건, 시골에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거나, 아님 전문직을 그만 두고 아예 다른 일을 하거나, 이런 건데...' '아, 그치. 요새 트렌드는 퇴사를 하거나, 뭐 부캐가 있거나 이런 건데..내 건 한방도 없고 주제도 좀 없었지.. 그렇다고 브런치 하자고 변호사를 그만 둘 수도 없고..' 이러면서 우리끼리 깔깔깔 웃었다. 깔깔 웃으면서 막막하고 먹먹하게 가슴에 얹힌 것 같은 감정은 좀 해소가 되었다.

  그렇게 털어버리고 나니, 좀 덜 건조하게 살아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지금껏 나는 대체로 건조하고 단조로웠다. 특히나 최근 십 년은 일하고 애키우고 자고, 일하고 애키우고 자고, 이런 일상들의 반복이었는데, 브런치북을 준비하는 밤 시간이 건조한 하루에 '약간의 물기'였다. 이제는 '하지 않아도 되는 일', '사소한 취미'에 내 시간을 내어주는 것을 허투루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하루의 습도를 높여줄 것이다.   


  사실 자려고 누웠는데, 자는 시간이 왜인지 아깝고, 잠도 오지 않아, 김민철의 <모든 요일의 기록>을 읽다가, 마음이 더 몽글몽글해졌다. 글도 좋고 작가님도 좋고 멋지다. 닮고 싶다. 나는 이슬아가 좋고 김민철이 좋다. 일단은 쓰는 습관을 가져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너무 나의 부족한 점을 알았다. 첫술에 배부르랴. 뭐라도 열심히 일단 써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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