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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

이태원 참사 조사의 방향, 수사와 조사의 분리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의 저자는 세월호 참사 특조위 조사관이다. 그는 '재난은 예고 없이 갑자기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긴 잠복기 속에 있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보통의 우리들(이 책을 읽기 전의 나를 포함해서)은 재난에는 '결정적인 원인이 존재하며 강력한 행위자들에게 책임을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재난의 '인과관계는 더 긴 역사적 과정과 더 많은 사회적 행위자들을 포괄해서 파악'되어져야 한다. 1986년 미국에서는 캘린저호가 발사 73초만에 폭발해서 승무원 7명이 전원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물리적 원인은 고체추진기인 O링의 이상 때문이었는데, 발사 전 화상회의에서 O링으로 인한 사고 위험이 경고된 적도 있었던 사정 등에 근거하여, 당시 위원회는 중간 관리자들의 의도적인 잘못으로 결론내렸다. 그러나 10년 후 사회학자 다이앤 본은 나사의 중간관리자들의 의도적인 잘못이 아니라, '생산압박이 나사의 조직문화를 바꿔 우주왕복선 발사 과정에 맞닥뜨리는 문제와 변칙을 정상적이고 용인되는 것'으로 만든 데 재난의 원인이 있다고 보았다.

  저자는 (형사책임을 위한) 수사와 조사가 분리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법적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조사가 시작되면 조사대상자는 처벌을 피하기 위해 정보를 감추는 위축효과가 시작되고, 이렇게 되면 재난을 있게 한 근본적인 시스템을 파악할 수 없게 된다. 기술적 조사와 사법적 조사를 분리하는 원칙은 사고 조사의 노블레임 원칙(no blame), 즉 개인을 비난하지 않는 원칙과도 연결되는데, 시스템의 변화가 없이는, 개인을 비난, 처벌하고 다른 개인으로 대체하는 것만으로는 유사사고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게 된 연유는 참여하는 언론사 회의의 이번 주제가 이태원 참사 보도였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알면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도 좀 알게되겠지 라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국가적 재난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어떤 역학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그 역학관계가 결과에 끼치는 영향력에 대하여, 최대한 주장을 빼고 사실만을 골라 설명하였다. 그런데 재난의 원인을 파악하는 조사 과정은 매우 과학적일(혹은 과학적이어야 할)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매우 사회적이고 의도적인 면면이 숨어있었다. 따라서 재난이 이미 일어난 이 시점 이후 우리가 해야 할 일 중에 하나는 재난의 근본적인 원인을 잘 들여다보고, 재난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방지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이고, 이러한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다소는 건조해야 하는 검증과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이는 희생자와 가족들에 대한 뜨겁고 지속되어야 할 연대와는 다른 맥락이다). 세월호 참사를 부른 외부 요인이 있었다는 해석이 있었는데(숨기는 자가 바로 범인이다, 라는 논리), 이는 결국 세월호 참사의 조사를 제대로 완료하지 못하게 막는 요소로 작용했다.

  윗선의 형사처벌은 물론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나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오해하지 않아야 하는 지점은 이 책이 책임자 처벌이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후, 재난에 대한 조사에서 수사를 분리시키는 감각을 가져야만, 그리하여 재난의 근본원인과 대책을 조사하는 것에 성실하고 차가운 감각을 가져야만, 우리에게 닥친 이 비극이 사회적인 의미를 갖고 더 나은 세상이 되게 하는 데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비극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들은 대부분 재난이 일어난 직후에 최대로 관심을 갖고, 그 이후 재난이 어디에서 비롯됐고 무엇을 고쳐야 이 재난을 막을 수 있을지 비로소 알 수 있는 시점이 됐을 때는 관심이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재난을 통해 배우고 나아져야 할 책무가, 재난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우리들에게 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재난의 사회적 의미를 올바르게 복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책 발췌 부분]

"재난 연구가 발전하면서 점차 재난의 원인이 사회 속에 내재해 있으며, '예측 가능한 발현'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재난은 예고 없이 갑자기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긴 잠복기 속에 있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우리 앞에 나타날 뿐이다. 재난이 이처럼 긴 전사를 가진 사건이라면, 재난의 인과관계를 알아내기 위해서 우리는 지진의 강도나 태풍의 강도만이 아니라, 왜 지진과 태풍에 취약한 지역에 주거시설이 건설되었는지, 왜 태풍이 잘 발생하지 않은 지역에서 태풍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등의 문제들을 역사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또 재난을 일으킨 특정 인물들이 아니라 이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 조직과 제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헤럴드호 침몰에서 선장과 선원의 잘못에만 집중하지 않고 왜 그들이 부주의하게 행동하게 되었는지 조직문화와 제도까지 다루는 것도 이러한 접근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135면)


"수사가 아닌, 조사-  많은 재난 연구자들은 재난의 인과관계를 더 긴 역사적 과정과 더 많은 사회적 행위자들을 포괄해서 파악해야 할 뿐 아니라 더 '복잡하게' 파악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그런데 재난을 복잡하게 바라보면, 책임자를 특정하기 어려워진다. 여러 조직과 행위자가 재난에 연관되었을 때, 사고를 막기 위해 고안된 심층 방어 시스템이나 사고를 막으려는 개인의 노력이 의도와 달리 재난의 원인이 되었을 때, '고의로 규칙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 아예 조직문화로 굳어져 버렸을 때,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과실이 아닌 비의도(혹은 선한 의도)에 의해서도 재난이 발생하며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어서는 안전이 달성될 수 없다고 주장한 연구들은 책임 배분에 관한 이해를 바꾸어 놓았다. 특정 행위자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고, 심지어는 책임을 아무한테도 물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통 결정적인 원인이 존재하며 강력한 행위자들에게 책임을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스템은 비인격적이지만 책임은 기본적으로 인격을 전제하고 죄를 묻고자 할 때 체제보다 사람을 떠올리는 것이 더 쉽기 때문에, 책임은 인격화되기 쉽다. 즉 현대 재난의 복잡한 성격과 책임자를 지목하려는 대중의 요구 사이에는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곤란이 있다.

컬럼비아호 폭발, 9.11테러, 후쿠시마 핵 발전소 사고의 경우처럼 재난에 대한 책임을 정치적, 도덕적 차원이 아니라 법적으로 물으려고 할 때 곤란은 더 커진다. 이 곤란은 영미권보다 일본과 한국에서 더 두드러진다. 기술적 조사와 사법적 조사를 분리하는 국제 기준과의 불일치가 더 심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국제 기준을 오래전부터 받아들였고 후쿠시마 사고 조사가 완료된 후에도 책임자들에 대한 아무런 법적 처벌이 없었을 정도로 대체로 이를 지켜왔지만 국제기준과 일본의 현실이 맞지 않는다는 논의가 반복되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최근에 와서야 위와 같은 원칙이 있다는 점이 학계 일부에 소개된 정도다.

기술적 조사와 사법적 조사(수사)를 분리하는 원칙에는 법적 처벌과 이에 한정되지 않는 원인 규명 및 재발 방지라는 두 목표의 동시 달성이 어려우리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재난의 인과를 명확히 밝히기 위해서는 발전소 노동자, 여객선의 선원과 같은 운용자의 진술에 상당 부분 의존해야 하는데, 법적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조사가 시작되면 조사 대상자가 처벌을 피하기 위해 정보를 감추는 위축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사와 수사를 분리하는 원칙 하에서는, 사고를 일으키려 한 명확한 의도가 밝혀지지 않는 한 사고를 일으킨 운용자를 기소하지 않는다. 또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이러한 원칙을 채택한 국가에서는 대체로 수사기관이 아니라 독립된 사고조사기구가 먼저 조사를 시작하며, 조사결과를 수사기관에 전저긍로 이관하지 않는다. 이는 사고 조사의 '노블레임(No-blame)' 원칙, 즉 개인을 비난하지 않는 원칙과도 연결된다. 개인을 비난, 처벌하고 다른 개인으로 대체해도 시스템의 변화없이는 유사사고가 계속 발생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138~140면)


"외국의 재난조사 중 우주왕복선: 캘린저호와 컬럼비아호 폭발- 1986년 챌린저호는 발사 73초 후 폭발했고 승무원 7명이 전원 사망했다. (중략) 챌린저호 폭발의 물리적 원인은 고체추진기의 O링의 이상 때문이었다. (중략) 로저스위원회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생산압박에 시달리던 나사의 관리자들은 챌린지호 발사 전 화사 회의에서 기온이 낮을 경우 O링의 연성이 사라져 사고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치오콜사(고체 추진기 제조사) 엔지니어들의 경고를 무시했다. 그들은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안전 규칙을 위반하고 발사를 강행했는데, 로저스위원회는 이를 나사 중간 관리자들의 의도적인 잘못으로 결론내렸다.

10년뒤 사회학자 다이앤 본은 챌린저호 발사과정을 분석한 책 <챌린저호 발사 결정>을 출판했는데, 여기서 그녀는 나사의 중간관리자들이 발사 결정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안전규칙을 위반했다는 해석에 반대했다. 생산압박이라는 사회적 원인은 개인의 의도적 규정 위반으로 곧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사회적 원인과 개인적 원인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조직이라는 중범위 수준을 분석에 포함시켜야 한다. 생산압박은 나사의 조직문화를 바꿔, 우주왕복선 발사 과정에 맞닥뜨리는 문제와 변칙을 정상적이고 용인되는 것으로 만들었다. 우주왕복선은 첨단기술의 구현체였기 때문에 기술적 문제의 발생은 당연시되었고, 위험평가 과정에서 초기에는 강력한 위험신호로 보였던 것들이 약한 신호로 변경되었다. 이 결과 챌린저호 발사 결정 당시 나사의 관리자들은 O링 문제를 충분히 '수용 가능한 위험'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들은 O링의 문제가 이렇게 큰 비극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상태에서 발사결정을 내렸다. 챌린저호 발사라는 잘못된 결정은 고의적인 규칙 위반이 아니라, 외부에서 일탈이라고 보는 행동을 조직 내에서는 완전히 수용 가능하다고 본 '일탈의 정상화'로 인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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