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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의미

숨박꼭질과 배신

  1호는 별로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2호는 책을 읽어주면 단어 뜻을 물어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얼마전에는 잠자리 독서를 하는데 배신이 무엇인지 물었다. 

  내가 '배반하는거지'라고 답을 하자, '배반이 뭔데?'라고 물어봐서 '신의를 져버리는 거지'라고 하니 '져버리는 게 뭔데?'라고 하였다. 

  보다 못한 남편이 '니가 철수랑 숨박꼭질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철수랑 너랑은 서로 찾지 않기로 약속을 했는데, 철수가 술래가 되서 너를 찾았어. 그게 배신이야.'라고 설명했다. 

  나는 뭐라고 해야 할까, 뭐라고 딱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좀 이상한 것 같았다. 

  옆에 있던 딸이 '그건 아니지'라고 하기에, 속으로 '그렇지.'라고 생각하며 딸의 대답을 기다렸다. 

  딸은 '니가 철수랑 숨박꼭질을 해서 열심히 숨었는데, 철수가 너를 안찾고 집에 혼자 가버리면 그게 배신이지'라고 설명했다. 

  내가 '그건 배신이 아니라 어이가 없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자, 남편과 딸은 '어디 그렇다면 니가 한번 설명해봐라'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사실 매우 진부하게밖에 말하지 못했다. '니가 어떤 애랑 너무 사랑해서 결혼을 했는데, 걔가 너 말고 다른 사람이 좋대. 그게 바로 배신이지'라고 말했다. 내 말이 어디 하나 틀린 구석은 없는데, 맥이 풀려버린 느낌이랄까. 둘째의 '배신'에 대한 관심이 이미 사그라졌다. 

  며칠 동안 '배신'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 설명했으면, 더 상황에 맞았을까. 간신히 배신의 예를 떠올렸다. '니가 숙제를 다하면 엄마가 숨박꼭질을 해주기로 해서, 숙제를 열심히 다했는데, 숙제를 다했는데도 엄마가 숨박꼭질을 해주지 않는 경우'... 이렇게 말했으면 꽤 그럴듯 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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