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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동KimLawdong Nov 01. 2022

60일과 61일

(브)런치를 먹다 / 울음의 총량은 정해져 있습니다

60일 - (브)런치를 먹다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시는 분의 결혼식이 있었다. 아내와 이삼주 전부터 유니온을 결혼식에 데리고 갔다가, 근처에 수유실이 있는 카페에서 식사를 하기로 작전을 세워두었다. 아내는 아주 설렌다고 하였다. 요즘 좀처럼 외출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들에게 유니온을 직접 보여줄 일을 기대하고 있기도 하였다.


일찍부터 준비를 서둘렀다. 대략 여섯 시 반부터 씻고 짐을 챙겼다. 결혼 당사자와 그 가족들만큼은 아니었겠지만 우리 부부도 둘이서 외출할 때보다 서둘러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온수, 기저귀, 가제 수건 등을 넉넉하게 챙겼다. 유모차는 바퀴 부분과 시트 부분을 분리하여 차에 미리 실어두었다. 가는 동안 유니온이 배고프지 않게 분유를 충분히 먹이고, 출발 직전에 기저귀도 갈았다. 09:30 무렵 유니온을 카시트에 앉히고 출발했다!


유니온은 차량에서 오는 진동이 좋았는지 결혼식장에 가는 내내 곤히 잠들어 있었다. 주차장에 도착해 다시 유모차를 결합시키고 유니온을 앉힌 채 결혼식장으로 올라갔다.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은 사진으로만 보던 유니온을 만나보고는, 입을 모아 유니온이 무척 순하다고 이야기하셨다. 유니온은 종종 손님이 오거나 사람들이 많으면 자신의 실체를 감춘 채 무척이나 점잖게 행동하곤 한다. 장조부님과 장인어른이 오셨을 때도 그렇고, 아내의 친구분이 집으로 놀러 왔을 때도 그랬으며 오늘도 그랬다. 유니온이 어떤 전조도 없이 격하게 울어댈 때 우리가 느끼는 당혹스러움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나의 어머니(유니온의 할머니)만이 전에 집에 잠깐 들렀다가 그런 봉변을 당하고 화들짝 놀라신 적이 있다.


유니온이 배고픔을 느낄 것 같은 시간에 결혼식장을 빠져나왔다. 주차장에서 분유를 먹이고 카페로 이동하기로 했다. 통에 담아온 분유를 한꺼번에 부어서인지, 온도를 맞춰온 온수가 약간 식어서인지 생각보다 분유가 잘 녹지 않았다. 아내가 다음번엔 온수 온도를 약간 더 높게 해서 가져와야겠다고 이야기하였다. 유니온은 대변도 보았는데 차 안에서 기저귀를 갈아 줄 방법은 없어, 카페(수유실이 있는 곳임)에서 기저귀를 교환하기로 하였다. 이동하는 동안 유니온의 향기가 차 안에서 퍼져나갔다.


카페에 도착했다. 나는 메뉴를 주문하고 자리를 잡아 기다리고, 아내는 (혹시 모르니 혼자) 수유실로 가 유니온의 기저귀를 갈고 오기로 했다. 아내는 옆에 계신 분이 방수포를 깔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을 보고 다음 외출할 때는 방수포도 챙겨야겠다고 나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아기 이불 비슷한 용도로 쓰는 부드러운 면포를 깔고 유니온의 기저귀를 갈아주었다고 한다. 카페 안에는 아이 혹은 유니온처럼 어린 아기와 같이 온 사람들이 많았다. 유니온이 조금 울거나 해도 이해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안심되고 든든해졌다.


얼마 기다리니 진동벨이 울렸고, 엄청난 양의 브런치 세트를 받아왔다. 메뉴는 브런치였지만 사실 시간대는 그냥 런치였다. 아내는 두 달만에 하는 외식인 것 같다고 이야기하였다. 생각해보니 출산 전 날 아내와 함께 밖에서 밥을 먹었고, 그 이후로 함께 외식을 한 기억이 없었다. 두 달 전의 일이었다. 아내와 함께 밖으로 나와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이 좋았고, 얌전히 있어주는 유니온이 고마웠다.


식사를 마치고는 포토존에서 세 사람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수유 텀을 기준으로 계속 반복되는 일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다. 아내는 주중 내가 출근해있는 시간 동안 계속 이를 반복하니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밖으로 나와있는 동안에도 집에서와 똑같이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하는 일이 있었지만, 집에 있을 때보다 훨씬 시간이 잘 가고 무엇보다 유쾌하게 흘러간 것 같았다. 종종 세 사람이 같이 밖으로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 다음 외출 시에는 온수 온도를 좀 더 높여서 준비하고, 방수포를 가져가자.



61일 - 울음의 총량은 정해져 있습니다

유니온은 주말 분의 울음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듯이, 새벽부터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어제 울지 않고 얌전했으니 오늘은 내 맘대로 하겠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기도 눕혀보고 저기도 눕혀보고 하면서 조금이나마 달래지는 장소를 찾아보았다.


금요일부터 앞으로의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미뤄놓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방향으로 생각이 흘렀고, 고민 끝에 무언가를 해보는 방향으로 마음을 정했기 때문에, 60일 저녁부터는 이와 관련한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날따라 유니온이 잠도 깊이 들지 않고 계속 칭얼대거나 울어서,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마음이 복잡한데 신경 쓰이는 일에 온전히 집중을 못하니 초조해지고, 짜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내가 그런 나를 위해 유니온을 달래려고 애썼지만, 이날은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유니온이 밖으로 나가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고, 기분을 리프레시하고 싶은 마음도 들어 밖으로 나가자고 하였다. 유니온을 아기띠에 안고 아내와 함께 근처 카페로 갔다. 아기띠에 안겨있는 동안 유니온은 잠들었고, 아내와 함께 짧으나마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아내는 카페인 섭취를 오랫동안 금해왔기 때문에 최근 들어 다시 커피를 마시게 되었을 때 무척 큰 기쁨을 느끼는 듯했다.


집으로 돌아와 유니온을 다시 내려놓자, 다시 까칠해지기 위한 시동을 걸기 시작하였다. 아내가 분유를 먹였지만 분유도 잘 먹지 않았고, 30분 조금 안되게 잠들었을 뿐 깊이 잠들려고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나도 하던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대변을 본 유니온의 엉덩이를 씻겨주고 나서, 수양하는 마음으로 목욕까지 시키기로 하였다. 유니온을 씻겨주고 있으면 마음이 좀 차분해질 것 같았다. 훈련소 종교활동 시간에 원불교 행사에 참석해본 적이 있다. 그때 들었던 “원망 생활을 감사생활로”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나는 옛날부터 급하고 중요한 일(혹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생기면 머릿속이 그 일로 가득 차버리곤 했다. 그 일을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마음이 조급 해지는 느낌이 들었고, 그 과정에서 몰입이나 집중이 깨지면 무척이나 큰 짜증이 몰려왔다. 어떻게 보면 일의 해결보다는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나 느낌'을 더 중요시한 것도 같았다. 사실 하루 이틀 정도 더 걸려서 일을 마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오늘 조금 하고 내일 조금 하고, 모레 조금 하는 식으로 그날그날 상황에 맞추어하여도 큰 차이는 없을 일이었다.


살면서 겪는 일들이 꼭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맞추어 오지 않는다. “오늘은 다른 일정이 없으시군요, 그럼 한가하신 것 같으니까 이런 일을 한 번 겪어보시죠.”하는 식이 아니라, 어떤 때는 무척 평화롭고 어떤 때는 고민할 거리가 마구 겹쳐 생기기도 한다. 결국 여러 가지 일들을 그날그날 상황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할 수 있는 만큼씩 해야 되는데, 어쩐지 조급한 마음에 서두르게 된다. 유니온을 달래느라 작성할 서류가 조금 늦어졌다면 나는 서류 작업을 제대로 못 한 것이 아니라, 유니온을 달래는 일을 함께 한 것일 뿐인데.


몸의 긴장을 풀고, 시간을 사용하는 방식과 관련해서 생길 변화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겠단 다짐을 한다. 나는 그날 상황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고, 그날 하지 못해도 다음 날 또 다른 시간이 있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조금 미뤄진 시간 동안 나는 앞으로 함께 살아갈 유니온과 시간을 보낸 것이라고. 그렇게 함께 보낸 시간이 나중에는 다른 어떤 시간보다 소중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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