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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동KimLawdong Nov 30. 2022

71일

목욕이야기

조리원에 있는 동안은 조리원 선생님들이 유니온을 씻겨주셨다. 조리원에서 퇴소하는 날 아침 일찍 투명 창을 통해 선생님들의 목욕 시연 장면을 보았다. 겁이 나서 할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를 아내와 나누었다.


조리원에서 퇴소하고는 산후도우미 선생님이 오셨다. 주중에는 도우미 선생님께서 유니온을 씻겨주었다. 주말에는 도우미 선생님이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부부가 유니온을 씻겨야 했다. 카카오톡을 확인해보니, 7월 31일 오전에 처음 둘이서 유니온을 씻겼다는 이야기를 주변에 했던 기록이 있다.


아내는 출산 이후로 손목이 많이 약해졌고, 유니온을 직접 씻기는 일은 내가 담당하게 되었다. 아내는 씻겨 나온(?) 유니온의 몸에 물기가 없도록 꼼꼼히 닦아주고 로션을 발라주고 옷을 입혀준다.


아직까지 유니온을 돌보는 대부분의 일은, 물론 육체적으로 피곤하긴 하지만, 크게 힘을 써야 한다거나 땀이 흐른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목욕을 시키는 일은 조금 느낌이 다르다. 일단 두 개의 욕조에 물을 받아 들어서 옮겨 놓는 것에서부터 힘을 써야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데드리프트를 잘하면 육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욕조를 옮기고, 버둥거리는 유니온을 붙잡고 따뜻한 물에 씻기다 보면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유니온은 깨끗해져서 꼬릿한 냄새가 사라지는데, 나한테서 땀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땀냄새 총량 보존의 법칙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따뜻한 물에 손을 넣고, 땀을 흘리고 있으면 어느 정도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도 든다.


유니온을 씻길 때는 일단 옷을 입힌 채 세수와 머리 감기기부터 한다. 유니온의 머리를 감길 때 머리카락이 이마 위로 모두 넘어가, 고전 영화배우들의 올백 넘김 머리처럼 된다. 그러면 유니온의 얼굴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신기한 모습으로 변한다. 누군가를 닮았는데 누군지 알 수가 없다.


세수를 마치고 머리를 감기기 시작할 무렵이면 유니온은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머리와 얼굴을 닦아 준 후 욕조 안에 몸을 넣어줄 때도 울었다. 그러다가 막상 목욕을 마치고 나면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방긋방긋 웃곤 했다.


오늘, 유니온을 목욕시키는데 유니온이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울지 않았다. 욕조에 몸을 넣어줄 때는 오히려 즐거워하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 나의 기술이 특별히 는 것 같지는 않은데. 오늘만 특별히 우리를 긍휼히 여긴 것일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벌써 아기용 튜브를 사줄까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발행을 앞두고 덧붙임.

며칠 전까지도 사용하던 욕조 사진인데, 이제는 유니온이 물장구를 치듯 물속에서 발차기를 하면 물이 온통 넘쳐버려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요즘은 선물 받은 큰 욕조를 사용하고 있다. 아내는 여전히 손목이 아프지만, 머리를 감길 때 유니온을 들어 올려 안고 있는, 사랑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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