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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동KimLawdong Dec 14. 2022

개업할 결심

3. 퇴사 인사를 하다

제가 신뢰하는 로스쿨 동기 형이 있습니다. 퇴사, 이직, 개업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하니 그 형이 변호사 님(이하 ‘A 변호사 님’)한 분을 소개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같이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시면서 자리를 주선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저쪽에서 맨투맨 티셔츠를 입은 분이 걸어 들어왔습니다. A변호사 님께서는 이야기를 들은 대로 무척 진취적이고 사고가 자유로운 분이셨습니다. 형식에 얽매이기보다는 핵심과 포인트로 단숨에 이야기를 끌어가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변호사 님께서는 음식을 팔기로 했으면 제일 간단한 음식이라도 만들어 팔아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최고의 레시피를 찾겠다고 연구만 하고 있으면 결국 음식을 팔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사무실에 퇴사하겠다는 이야기는 하였느냐고 물으셨고, 저는 11월 말까지는 다닐 생각이라 조금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A변호사 님께선 그냥 다음 날 오후쯤 가볍게 해 보라고, 농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으로는 결심이 서있었지만, 사무실에 퇴사할 결심을 알리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다음 날 오후, 대표 변호사님께서 업무와 관련하여 저를 방으로 불렀습니다. 저는 대표 변호사님께 간 김에 그 전날 들은 것처럼 11월까지만 근무하고 퇴사하려고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머릿속으로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질서 정연하게 정리되어있었는데, 처음 퇴사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생각해두었던 말들이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첫 직장이었고, 꽤 오래 함께했던 직장을 떠나겠다고 말씀드리려니 저도 마음이 복잡했던 것 같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일단 알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갑자기 들은 이야기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신 듯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며칠 뒤에 퇴사와 관련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정리된 말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아마 그 며칠 동안 제 생각이 조금 더 확실하게 정리되어서인 듯합니다. 태어난 자녀가 더 자라기 전에 도전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 지금은 아내가 휴직을 하고 있지만 나중에 복직하게 되었을 때 자녀를 키우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 이직 제의를 받았지만 지금 다시 어디론가 이직하기보다는 개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단 이야기, 글도 쓰고 하면서 조금 더 자유롭게 일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아이디 geralt)


두 달 조금 안 되는 남은 기간 동안 출근하면서 사무실에서 하던 일을 마저 처리하고, 중간중간 공유 오피스 투어도 다니고 하다 보니 어느덧 11월 말이 다가왔습니다. 대표 변호사님께서는 며칠 정도 집에서 쉬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출근 기간을 배려해주셨습니다.


마지막 출근 날 점심식사 자리에서 저의 송별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송별 식사 자리를 하루 앞두고 남아 계신 분들께 전할 인사말을 적어두었습니다. 송별 식사 자리에서 적당한 틈을 보아 자리에 계신 분들께 읽어드렸습니다.



“2019. 8.에 처음 법무법인 OO에 들어왔습니다. 약 3년 4개월 동안 근무했던 사무실을 떠나려니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이 머릿속을 오갑니다. 그렇지만 대표님께서 인사하다가 울지 말라고 낮에 자리를 마련해주신 것 같으니 울지는 않겠습니다.


법무법인 OO은 제가 공익법무관 복무를 마치고 내디딘 사회생활 첫발과 함께 한 곳입니다. 근무하는 동안 저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올해 0월에는 유니온이 태어나기도 했습니다. 특히 아내의 출산 준비와, 태어난 유니온을 돌보는 과정에서 자리를 비우는 일이 많았는데 여기 계신 분들께서, 그리고 지금은 자리에 계시지 않지만 OOO 이사님, OOO 이사님, OOO 실장님께서도 모두 조금씩 배려해주신 덕분에 삶의 중요한 여정들을 잘 밟아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는 데에는 법무법인 OO에서 들어오는 안정된 소득이 기여한 바가 매우 컸습니다. 물질적인 부분의 충족 없이 안정되고 편안하게 살아갈 길은 없습니다. 이 부분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비정전>이라는 영화의 도입부에는 장국영 배우가 장만옥 배우에게 1분 동안 시계를 바라보라고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고 나서는 1분 동안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은 이제 이미 과거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바꿀 수 없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영화 속에서는 소위 ‘작업 멘트’로 쓰인 것인데 그런 맥락을 빼놓고 대사만 놓고 보면 대략 저렇습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법무법인 OO에서 3년 4개월 동안 근무했다는 사실도 이미 과거가 되어 바꿀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역사나 이력에 서로를 기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사무실에서 퇴사하게 된다고 하여 툭 끊어져 남처럼 될 수 없습니다. 이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응원하고 성장시켜나간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저는 더 훌륭하고 좋은 변호사가 되어, 법무법인 OO이 최고의 변호사를 배출한 곳이라는 평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기 남아계신 분들은 제가 최고로 훌륭한 로펌 출신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힘써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있는 동안 해주신 배려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떠나는 인사가 너무 거창하면, 금방 다시 만났을 때 길고 장황했던 인사가 민망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마지막 날, 같이 일했던 분들께서 예상치 못한 작별 선물을 많이 준비해주셨습니다. 이틀 전에 짐을 다 옮겨 두어 차를 두고 출근하였는데 예상 못했던 선물 덕에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지하철을 타야 했습니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제가 이와 같이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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