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내가 뜨거웠다

4-3 감히 내가 뜨거웠다

by 오구TREE

그 누구도 모르는 비밀이 하나있다. 나는 여전히 약을 팔고 있다는 것.


월드컵이 끝나고 가족이 모두 피자를 먹은 뒤,

그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다.

아니, 내가 기회를 만들지 않았다.

쥐꼬리만한 낚시방으로는 도저히 집으로 돌아갈 수 없기에 다시 발을 들였다.


예전과는 방법이 달라져서 스마트폰으로 중개를 한다.

그걸 배우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뿐, 나는 역시 머리가 좋긴 하다.

오히려 이 방법을 더 잘 써먹어서 예전 고객도 모두 되찾고 새로운 사람에게서도 연락이 많이 온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물량이 달려, 업자한테 오해를 받을 정도다.


됐다. 이만하면 됐다.

집에 갈 수 있다.

지원이에게 예쁜 옷을 입혀주고 지후 축구교실도 보내줄 거다.


“아빠는 왜 맨날 누나만 좋아해? 나는 싫어?”

질투가 많은 지후다.

그럴만도 한 것이 어느 해 어린이날에 지원이에게 품에 가득 안기는 인형을 선물해 준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날 지후에게는 감자만한 인형을 사주었다.

“으아앙- 아빠는 지후 싫어해. 누나랑만 살아!”

내가 자초한 일 아니겠나. 누가 뭐래도 지원이는 내 첫사랑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지후한테도 지원이 못지 않게 잘 해줄거다.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척척 해주는 아빠가 될거니까.


“어이, 김준호. 니 진짜 집에 안드갈래? 인자 11월 중순이다. 곧 지원이 생일 아이가?”

“어- 우리 지원이 생일 다 되가지. 안그래도 생일 선물 멋드러지게 준비했다 아이가!”

“야 그라모 니 이제 집에 들어가서 사는거가?”

“어…. 쫌 보고! 혼자 석유난로 꼴랑 2리터 피우다가 집에 드가면 30리터씩 넣어야 된다 아이가.

손 떨린다 손.”

우습게 손 떠는 시늉을 하며 애써 나의 비밀을 숨긴다.

“그래도 당장 드가서 사는거 아니라도, 가서 며칠이라도 같이 있고 그래라.”

“애들이랑 천천히 다시 같이 지내는거 연습해야 안되나.”

“그래 알았다. 내일 가볼게. 걱정마라. 진짜다.”

“오야. 낚시방은 벌써 마이 춥네. 난로 잘 피우고 자고. 조심히 댕기고잉. 내 간다.”

나에게 잔소리하는 것은 이제 철순이 형 뿐이다.

아니 나를 아끼는 사람이라고 해야하나.

철순이 형을 생각할 수록 봉수가 떠오른다. 봉수는 잘 있으려나.


내일은 마지막으로 약을 거래하는 날이다. 가지고 있는 재고를 모두 소진했다.

딱 여기까지 하고 아이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머리가 멍하다. 졸린 건가.

눈이 저절로 감긴다.

갑자기 숨쉬기가 힘들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눈에 아른거린다.

나 대신 아이 둘을 키운 나의 어머니, 떠나버린 그녀,

내가 언제 올까 기다리는 아이들,

봉수, 철순형…


나는 아직 떳떳한 애비가 되지 못했다.

열네살 그 때 결코 가족을 두고 먼저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못지킬 것 같다.

내 주제도 모르고 위험한 일을 멈추지 못했다.

적당히 안전하게 살지 못하고 감히 내가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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