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첫 번째는 아니지만
평발이라 군대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들 입대 파티에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
봉수가 입대하기 전, 합천으로 여행을 왔다.
“가위, 바위, 보!”
“예! 준호 저 새끼 드디어 졌다!“
”퍼뜩 갔다 온나 임마. 니가 하자고 했다잉.“
하.. 결국 내 발에 내가 걸려 넘어졌다.
“저..저기요. 실례지만 저랑 악수 한번 하실래요? 제가 친구들하고 내기해서 졌는데,
이 계곡에서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는 분하고 악수를 하기로 했거든요…“
“아.. 네… 뭐, 악수는 할 수 있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자리로 돌아오니 친구들 표정이 이상하다.
“김준호, 니 왜 저 여자 골랐는데? 누가 봐도 일빠는 아인데?“
”첫 번째는 아니지만, 두 번째로 이쁘던데? 카고 저 사람은 내 악수 받아줄 거 같더라.“
친구들 모두가 연신 내 어깨를 치며 소리를 쳐댔다.
흘깃.
서로를 보고 있다.
“오오오오——- 저 사람도 니 보고 있다아이가. 가서 더 말 걸어 봐라. 남자아이가!”
“밀지 마라 이 새끼들아. 내가 다 알아서 한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우리끼리 물장구를 쳤다.
"아 배고프다. 인자 숙소에 가자. 계곡에 왔는데 닭 한 마리 뜯어야 안되겠나!"
배고프다는 말을 우리 중에서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언제나 형철이다.
"형철이 점마는 학교 다닐 때도 맨날 3교시 끝나고 도시락 까묵디만
니는 아직도 그렇게 배가 고프나?"
고등학교에 가지 않아서 모르지만 형철은 내가 보기에도 배고픈 인간의 부류에 속한다.
"자- 말할 시간에 벌써 먹었겠다. 빨리 가자."
이런 걸 우연이라고 부르는 거겠지.
“안녕하세요. 저 기억나세요? 낮에 계곡에서 저랑 악수 하셨..”
“아, 네. 그럼요. 기억하죠. 무슨 얘기를 하셨는지는 몰라도 소리 지르시는 것도 다 들었어요.”
숙소라고 하기에도 뭣한 우리 텐트 뒤에는 꽤 괜찮은 건물이 하나 있던데, 이 사람은 거기에서 묵나 보다.
“아, 부끄럽네요. 그런데 사투리를 안 쓰시는거 보니까 여기 분이 아니신가봐요?”
“네, 경기도에 사는데 오늘 회사에서 MT를 왔어요.”
“어려 보이시는데 회사원이신가 봐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일했어요. 동생이 많아서요.“
”실례지만 그럼 지금 몇 살이세요?“
”그쪽은요?“
”지는, 아, 저는 스물네 살입니다.“
”확실히 경상도 분이시네요. 저는 스물한 살이에요.“
”아… 예.“
한동안 말이 없었다.
놀 줄이나 알았지 연애라곤 해본 적이 없으니 뭐라고 말을 이어가야 할지 몰랐다.
조마조마했다. 이렇게 대화가 끝나버릴까 봐.
뭐라도 던져야 했다.
”같이 계곡에 달 보러 가실래예?“
”이 시간에 계곡에요?“
”예. 지금 가면 거기 달이 진짜 잘 보이고 환해예.
그쪽, 아.. 성함이 뭡니꺼?”
“그쪽은요?”
이 사람은 먼저 정보를 주는 법이 없다.
“저는 김준호입니다.”
“네, 저는 박순애예요.”
“순애씨, 그럼 이제 가실까요?”
최대한 서울 사람처럼 멋지게 말하고 싶었다.
내 마음이 두근거리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와아. 달이 진짜 크고 밝네요.”
“네. 오늘이 보름이거든요. 다 알고 이쪽으로 모시고 왔죠.”
“멋진 달 보여주셔서 고마워요.”
“뭘 이런 걸 가지구요. 낮에 흔쾌히 악수해 주신 것에 대한 보답입니다.
저.. 그런데 앞으로도 연락을 하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어떻게 연락하시게요? 저희 집은 대식구예요. 전화를 누가 받을지 몰라요.
게다가 저는 늦게 퇴근하구요”
“음… 주소를 알려주실 수 있나요? 편지할게요.”
“… ”
한참의 적막이 흐른다. 다시 조마조마하다. 이렇게 끝나버릴까 봐.
“저희 집은 경기도 주미시 비아면 수호리 34-1번지예요.”
“감, 감사합니더! 아. 아니 아니, 고맙습니다. 꼭 편지할게요.”
그렇게 불한계곡에서 두 번째로 예뻤던 여자와 연애라는 걸 시작하게 되었다.
내 나이 스물넷.
열네 살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아무것도 모를때보다 훨씬 순수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생각하면 마음이 순수해지게 만드는 순애씨께.
안녕하세요. 저는 합천에서 함께 달을 보았던 김준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