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점에는 새로운 취미를 찾는 데 집착하기도 했다. 새로운 걸 배우고 장비를 들일 때에 반짝 생기가 도는 게 좋아서, 흥미를 금방 잃더라도 계속해서 일을 벌이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취미 자체보다 시작할 때 느끼는 짜릿함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한 게 꽃꽂이와 훌라댄스였다. 둘 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수강했는데, 문화센터는 마치 별천지 같았다. 우쿨렐레, 재봉틀, 발레, 드럼, 유화 등 다양한 활동을 부담 없는 가격으로 시도해 볼 수 있었다. 그중 수업명이 마음에 들고 평일 낮 시간이 아닌 수업을 두 학기 차례대로 수강했다.
꽃꽂이 첫 수업을 가며 상상했던 건, 우아하게 꽃을 다듬고 선생님과 하하 호호 웃으며 화병에 꽃을 꽂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실제는 전혀 달랐다. 선생님의 빠른 손놀림을 따라가지 못해 허둥대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꽃에 속이 터졌다. 그래도 예쁜 꽃을 만지는 건 기분을 좋게 했고, 꽃 배치의 기본을 배우는 건 흥미로웠다.
하지만 그 설렘도 거기까지였다. 나는 그저 좋아하는 꽃 몇 가지를 예쁘게 배치하는 정도만 배우면 됐다. 완벽히 연마해 아름다운 센터피스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매주 재료비 3만 원도 부담이었고, 시든 꽃을 처리하는 일도 은근히 스트레스였다. 그러니까 나는 딱 원데이 클래스 정도면 충분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훌라댄스는 꽃꽂이보다 흥미가 더 빨리 식었다. 음주가무 중에서 '음주'만 자신 있을 게 아니라 이제는 '무'도 갖춰보잔 마음에 고른 수업이었다. 하지만 훌라댄스는 내가 상상한 '춤'과는 많이 달랐다. 생각보다 정적이고, 기마 자세 같은 기본 동작을 춤추는 내내 유지해야 해서 근력 운동에 가까웠다. 수업이 토요일 오전이라 자연스럽게 결석하는 날이 잦았다. 강의를 등록해 놓고 이렇게 불성실하게 수업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결국 꽃꽂이와 훌라댄스 모두 재등록은 하지 않기로 했다. 베이킹과 뜨개질을 할 줄 아니까 내가 손재주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돌이켜 보면 베이킹이나 뜨개질도 전체적인 모양을 완성하는 데만 집중했지, 예쁘고 완벽하게 만든 적은 없었다. 나와 잘 맞는다면 모를까, 무작정 취미랍시고 이것저것 시작하는 게 내 일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꽃꽂이나 훌라댄스를 처음 배울 때는 설렘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 잠깐의 설렘을 느끼고 싶어서 흥미가 없는 수업을 3개월 동안 이어가는 건, 재미없는 회사 일을 억지로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업에 가기 싫으면 자연스럽게 가지 않는 내 모습을 보며, 상담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스스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진 것 같아서 안심이 되었다.
근황
혹시라도 꽃 선물할 일이 있을까 해서 그때 산 꽃꽂이 용품은 그대로 보관 중이다. 춤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진 못해서, 요즘에는 초보용 힙합 춤 수업을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