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시도할 때 새로운 것만 한 건 아니다. 예를 들면, 이미 여러 번 시도했지만 제대로 해낸 적 없는 식물 키우기에 도전하기도 했다. 입사 후 원룸에서 자취를 시작하면서 공기 정화 식물을 산 적이 있다. 분명 키우기 쉽다고 했는데 죄다 시들시들하다가 죽어버렸다.
1.5룸 빌라로 이사 온 후 다시 화분을 들였다. 이 집은 거실 창문을 열면 실외기가 있고 그 옆에 화분 정도 둘 수 있는 턱이 있었다. 그 턱에 화분을 놓고 다이소에서 산 텃밭 쌈 채소 씨앗과 방울토마토 씨앗도 심었다. 이번에는 저번 집보다 해도 잘 들고 바깥바람도 맞을 수 있으니 더 잘 자라지 않을까. 사실 꼭 잘 자라지 않아도 괜찮았다. 뭔가 시도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게 중요했으니까.
쌈 채소도 방울토마토도 기대 이상으로 잘 자랐다. 쌈채소는 잎이 작긴 했지만 몇 번 뜯어먹었고, 방울토마토는 가늘긴 해도 분갈이까지 하며 제법 나무 모양새를 갖췄다. 작고 단단한 초록색 알맹이에서 성장을 멈추긴 했지만, 꽃도 피고 열매도 맺혔다. 키우는 내내 어제와 다를 게 없어 보여도 나는 사진을 이리저리 찍어댔다. 아주 작은 씨앗이었는데, 흙에 심고 물을 주니 혼자 싹을 틔우는 게 기특해서 사진을 안 찍을 수가 없었다.
겨울이 되면서 잎은 다 떨어졌지만 화분을 처분할 방법을 몰라 그냥 그 자리에 뒀다. 이사할 때 정리하자며 미뤄둔 화분 몇 개가 그렇게 실외기 옆에서 겨울을 났다. 봄이 되어 환기하려고 오랜만에 창문을 열었을 때, 나는 토마토 나무에 꽃이 폈을 때보다 더 놀랐다. 죽은 줄 알았던 화분에서 새싹이 빼곡하게 올라온 것이다.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스스로 싹을 틔운 모습을 보고, 쌈채소에서 처음 싹이 났을 때처럼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장마까지 지나자 화분은 잡초로 무성해졌다. 볼 때마다 다른 종류의 잡초가 자라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생각날 때마다 화분에 잡초가 있든 없든 물을 주었고, 내가 물을 주든 안 주든 화분에는 계절에 따라 다양한 싹이 돋아났다.
잡초 가득한 화분을 볼 때마다 안심이 되고 위안도 됐다. 비좁은 화분이지만, 저 애들은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잘 크는구나. 그냥 저렇게 싹을 틔우고 비를 맞고 잎을 피우는 것만으로도 사랑스럽구나. 나도 특별히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그냥 하루를 잘 지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구나.
근황
이사를 한 후에는 아무 식물도 키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