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 빠져드는 성격이라 나에게 입덕은 흔한 일이었지만, 그 그룹은 달랐다. 처음으로 음악방송 투표를 위해 어플을 설치했고, 신곡 순위를 올리려고 스트리밍도 돌렸다. 새 앨범 발표일을 손꼽아 기다리며 매일 설렜고, 작은 화면 속 무대 위 그들은 예쁘고 기특했고 멋졌다. 아, 이게 사랑인가 보다.
당시 내 마음이 워낙 메말라 있어서인지, 오랜만의 입덕이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이유가 어찌 됐든, 덕질은 내 일상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었다. 더 이상 나에게는 열정적인 순간은 없을 거라며 슬퍼했는데, 그 가수는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모든 열정 세포를 깨운 듯했다. 번아웃으로 힘들어하던 문제들이 한 번에 해결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팬심도 사랑처럼 쉽게 빠지면 쉽게 식기 마련이다. 내 마음도 그랬지만, 불타던 마음이 그대로 재가 되지 않고 숯으로 남아 내 삶에 계속 좋은 영향을 주었다.
멤버들 내 또래라서 더 친구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잘 되면 기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 짠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전부 잘 되길 응원했다. 그러다 보니 친구와 나를 이따금 비교하게 되는 것처럼, 그들과 나도 비교하게 되었다. 그들은 좋아하는 음악을 업으로 삼고, 연차와 상관없이 보컬 레슨을 받을 만큼 노래에 진심이었다. 그런데 나는 관심 있는 일도 따로 없고, 지금 하는 일에도 애정이 없다는 사실이 그들과 비교되었다.
베이킹이나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이었다면, 이런 생각에 더 깊이 빠져 우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내가 비록 작지만 긍정적인 힘을 조금씩 키우고 있었다. 그들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잘 해내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나는 이 뿌듯한 마음만으로 충분했다.
비록 내가 내 일을 좋아하진 않지만, 책임을 다하고 있으니 그걸로 됐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들이 할아버지가 되어 디너쇼를 할 때까지 노래하겠다고 하니, 나도 길게 보고 할머니가 될 때까지 내 마음을 줄 수 있는 일을 찾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응원하다 보니, 나 역시 그 응원 속에서 힘을 얻고 따뜻함을 느꼈다. 덕질을 통해 내가 아직 설렘을 느끼고 열정적으로 무언가에 빠질 수 있는 사람이란 걸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근황
최근 그들이 너무 열심히 활동하는 바람에 소식을 따라가기 벅차지만, 그래도 그들을 좋아하는 마음만은 변함없다.